작가가 꿈이어서 에세이만 몇 년째 쓰던 나는, 최근 다시 시 공부를 시작했다. 에세이 쓰기에서 요구되는 필연적인 기승전결의 구조가 현실적인 문제들처럼 지루했기 때문이다. 문단별 주제를 생각하고, 결말을 위해 달려가는 글쓰기는 감각을 왜곡 없이 담기엔 어려운 방식이었다. 사람은 그림을 그리고, 소리를 쌓아 오케스트라를 만든다. 언어도 그렇게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면서, 현실적인 문제에 당면해 있는 시기이다. 부동산에 관심을 갖고, 뉴스를 보면서 정치에 관해 말하는 일은 나를 어른처럼 만든다. 딱딱하고 잘 웃지 않게 말이다. 하지만 시 앞에서 내 마음은 허물어진다. 비록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일지라도, 당장 손에 잡히는 솜사탕보다 더 달콤할 때가 있다. 하루 종일 하늘만 바라보는 사람은 없겠지만, 일상 속 잠시 올려다보는 하늘은 얼마나 멋진가.
젓가락, 접시, 소시지, 오렌지주스, 달걀...... 그런 것들이 될 거야 사물이 된다면 달그락거림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사랑은 언제나 숨겨지고 수평선은 어둠을 끌어올리지 어둠에서부터 파도가 밀려오는 거야
눈물이 나는 건 물새떼처럼 알 수 없고 구름처럼 멀리 있는 것들 때문이지
가라앉아서 숨을 쉬자 물고기가 된다면 수영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언젠가 삶은 사라지게 될 거야 아무것도 슬프지 않을 거야
박시하, 구체적으로 살고 싶어, 전문
순식간에 시작했다가 끝나는 이런 시가 있다. 여기서의 ‘구체적’은 에세이 쓰기에서의 ‘구체성’과는 다르다. 에세이 쓰기에서의 현실적 상황이 아니라, 말 그대로 뜬구름을 잡는 말들이 가득하다. ‘사물이 되고 싶다’는 시인의 말에서, 우리는 어떤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
젓가락은 길쭉하고 짝이 있다. 날카롭지만 일상적이다. 접시는 넓다. 깊이나 재질, 디자인은 다양할지라도, 무언가를 올리기에 아늑한 장소다. 오렌지주스는 달콤하고 시원하다. 노란 빛깔을 꿀꺽꿀꺽 마시면 갈증도 해소되고 힘이 난다. 어쩜 그렇게 쓰임새가 확실할 수 있을까.
그에 반해, 우리는 늘 그렇게 쓰임을 자각하며 살 수 있을까? 우리 삶이 두렵다고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나의 쓰임새가 불분명할 때가 아닌가 싶다. 사물이 된다는 상상은 이상하게도 위안이 된다. 정해진 쓰임이 있다는 건, 오히려 마음이 놓이는 일이다. 하지만 시인은 곧 깨닫는다. 젓가락처럼 짝이 없으면 외롭고, 마셔지면 사라지는 존재는... 너무 인간 같다.
시를 쓰려면 시를 읽어야 하고, 시를 읽다 보면 무언가가 느껴질 테다. 에세이를 읽을 때와는 다른 감동과 감화가 전해져 온다. 에세이는 ‘무엇을 말할 것인가’의 글이고, 시는 ‘무엇을 느끼게 할 것인가’의 글이라고 해야겠다. 물론 시가 그리 대중적인 장르는 아니다. 시인은 보통 자신의 내면에 깊이 침잠해 있는 사람들이라고 믿는다. 그래서일까, 어떤 시, 특히 현대시들은 외계어처럼 들리기도 하고 ‘이걸 이해하는 사람이 있나’ 싶을 때도 있다.
그에 반해, 에세이 쓰기의 성공 조건 중 하나인 ‘구체성’을 가지고 쓰는 산문은 마치 만국 공용어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다. 친구에게 말하는 것처럼 일상적이어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접하고 시도하는 글쓰기 방식이다. 그러나 에세이만 세상에 있다면 어떨까? 마치 소수민족이 존재하지 않는 지구를 상상하는 것 같다.
나는 소수민족의 언어를 배우기로 했다. 조금은 외롭고 낯설더라도, 다양한 말들의 세계에 발을 담그기로 마음먹었다. 이미 이야기 나누고 싶은 시인들이 오랜 시간 그들만의 시를 쌓아올려 두었으니, 이제 그 곁에 앉아서 시를 읽는다. 나는 솔직하고 구체적인 생각을 말하기만 하면 된다. 언젠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감각하는 사람이 되기를 소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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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명 - 서나연 코너 제목 - 하루 한시 ㅣ 에세이 쓰다, 시를 배우다 코너 소개 - 에세이를 쓰다 시를 배우게 된, 엄마이자 작가의 기록. 시 한 편을 중심으로, 일상의 감정과 나름의 결론을 햄버거처럼 차곡차곡 쌓아 전합니다. 가끔은 뜨겁고, 가끔은 물컹한 한입을 함께 나눠요.
작가 소개 - 문예창작과를 나와 유독 ‘시’감성이 충만한 글러버입니다. 매일 쓰고, 다듬으며 살아갑니다. 공저 에세이집 <전지적 언니 시점> 등을 펴냈고, 지금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내가 죽으면 무엇이 될까요?” 그 질문이 저를 살게 합니다. 언젠가, 저는 무엇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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