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너에게 최선이야.' 라고 쉽게 말하지 말아요
아일랜드 일상다반사, 도윤 |
|
|
그녀, ‘메리’와의 첫 만남은 일요일 미사 후에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간단히 다과를 나누던 성당 옆 마을센터 강당에서였다. 남편 측 손님으로 오신 결혼식 하객들이라 대강 얼굴은 알 것 같았지만, 나이와 상관없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서양식 호칭문화가 아직은 낯설기도 하고 솔직히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라 그날의 그 자리가 나는 어색하고 다소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아일랜드의 축축한 바람이 어느새 시원하다고 느껴지는 7월의 어느 날에, 강당에서 하는 모임일지라도 하얀색 테이블보를 깔고 예쁜 티스푼을 놓은 찻잔과 신선한 우유를 담은 허리가 날씬한 저그(jug)에 설탕을 담은 정갈한 도자기 그릇이 놓인 테이블은 격식을 차리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해 보였다. 아이를 낳고 밤낮없이 한 생명을 돌보느라 정신없이 보냈던 지난 5개월의 시간을 지내고, 동네 강당에 차려졌지만 정성을 다한 다과상 앞에 앉아 있으니 나는 마치 5성급 호텔의 애프터눈 티룸(afternoon tearoom)에 초대받은 것과 같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아이를 왼쪽 무릎에 조심스럽게 앉히고 또 왼손으로 잘 안은 다음 오른손으로 버터와 딸기잼이 올려 진 홈메이드 스콘을 집어 들어 한 입 베어 먹기 시작했다.
|
|
|
|
바로 그 때, 한 개의 앞니가 빠져있고, 약간의 턱수염이 있는 한 중년 여성이 우리 테이블 쪽으로 걸어오며 아이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나는 짐짓 당황을 했지만, 성가대에서 가장 큰 목소리로 정말로 진지하게 노래하는 그녀의 모습이 살짝 재밌기도 하고 또 감동적이기도 했던 기억이 있어서 다가오는 그녀에게 미소를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런 순간도 잠시, 그녀는 아이의 뺨을 만지더니 나에게 아이를 안아 봐도 되는지 묻지도 않고 아이를 안아 들었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아이는 무서웠는지 그녀의 목을 끌어안고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는데, 그녀는 그 상황을 오해하면서 아이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큰 소리로 말하면서 아이를 안고 흔들기 시작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고 있었는데 그때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여성분이 나에게 살짝 윙크를 하더니 메리에게 다가가 “정말 아이가 예쁘지? 그럼 나도 좀 안아볼까.”라고 말을 건네는 거였다. 메리는 순순히 그 여성분이 아이를 안을 수 있도록 건네주었고, 그분은 아이가 괜찮은지 얼굴을 살짝 들여다본 뒤 아이를 다시 내 무릎에 앉혀 주셨다.
그 날 이후로 나는 그녀를 마주치면 약간 움츠려들었는데, 반대로 그녀는 우리를 발견하면 장소를 불문하고 일단 두 손을 벌려 달려와서 기어이 아이를 한번 안아보고서야 우리를 보내주었다. 아이가 조금 자라서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익숙해진 것인지 아장거리는 걸음으로 아이가 그녀를 먼저 안아주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마가렛은 아이가 나를 정말 행복하게 해 준다며 큰 웃음을 지어 보이곤 했다. |
|
|
|
메리를 만날 때면 언제나 한 여인이 그녀의 뒤에 서서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바로 메리의 엄마 ‘앤’이었다. 앤은 키가 크고 마른 편이었는데, 주름진 얼굴 위해 동그란 안경을 쓰고 잔잔한 미소를 짓던 분이셨다. 그녀의 남편은 일찍 세상을 떠났고, 4명의 자녀 중에 메리와 폴은 중년을 훌쩍 지났지만 미혼으로 지내며 아직까지도 엄마인 앤의 돌봄을 받으며 살고 있었다. 사실 앤의 집은 동네에서도 오래된 집중에 하나였는데, 이끼가 가득한 지붕과 곳곳에 벗겨진 페인트 칠의 외관이었다. 그렇지만 오래된 창문 너머로 손으로 짠 레이스 커튼이 정갈하게 달려 있었고, 누군가의 도움인지 마당에 잔디는 늘 잘 손질 되어 있었다.
앤은 늘 조용히 메리과 폴을 돌보는 생활을 했는데, 반면에 두 자녀들은 굉장히 외향적이어서 앤은 그들을 데리고 늘 이곳저곳을 운전해 다니곤 했다. 그런데 지난 가을 어느 날인가부터 앤이 한 손은 지팡이를 짚고, 또 나머지 한손은 메리의 팔을 잡고 미사에 참석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이유로 동네 사람들은 앤의 자리를 대신해서 메리와 폴을 위해 돌아가면서 운전을 해 주었고, 두 사람은 마을 사람들 덕분에 일상을 어려움 없이 이어가고 있었다.
시어머니께서는 그 일이 있은 뒤 갓 구운 스콘을 가지고 자주 앤의 집을 방문하곤 하셨다. 앤이 말하길, 몸은 불편하지만, 익숙한 집에서 지내면서 메리와 폴이 자신을 잘 부축하며 돌봐주고 있고, 메리가 요리도 잘하는 편이어서 큰 어려움이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주시기도 했다. 사실 나는 앤의 그 말이 정말 진심처럼 들렸다.
|
|
|
|
그렇게 몇 개월의 시간이 지난 뒤 동네 사람들이 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미사를 마치고 성가대에서 나오는 메리에게 몇 몇의 사람들이 다가가 이제는 앤을 병원에 보내야 한다고 설득하는 것 같았다. 그 사람들은 메리를 설득하기 위해 여러 가지 말을 했지만 나에게 유난히 크게 들렸던 이야기는 바로 ‘그렇게 하는 게 너에게도 또 엄마에게도 최선이야.’ 라고 하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난 메리는 ‘간호사도 정기적으로 오고 또 간병인이 찾아와서 나와 함께 어머니를 돌보고 있으니 아직은 괜찮다.’ 라고 답변을 했다. 하지만 그렇게 대답을 하고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에 대고 메리를 설득하려고 했던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차며 메리가 앤을 어떻게 돌보겠냐며 누구라도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크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몇 주의 시간이 지난 뒤, 급기야 그 사람들이 메리와 폴은 더 이상 앤을 돌볼 수 없으니 앤을 요양병원으로 데리고 가야 한다고 보건소에 직접 연락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자주 앤을 들여다보던 시어머니께서는 그런 사람들의 행동을 매우 언짢아 하셨는데, 그럴 시간에 그 집을 방문해서 도울 수 있는 일이 없는지 살펴보는 것이 더 나은 행동이 아니겠냐는 말씀도 하셨다. 그렇지만 결국 보건소에서는 앤을 집에서 데리고 나와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결정이 내려졌고, 그 이후 동네 사람들은 앤을 생각하며 메리와 폴을 도우며 두 사람이 일상에 어려움이 없도록 마음을 써줬다. 그렇게 두 달 정도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면 늘 지역사회 사람들의 부고란을 인터넷으로 찾아보며 이웃들의 동정을 살펴보시는 시아버지께서 어느 저녁에는 한 개의 부고를 보신 뒤, 한참을 아무런 말없이 앉아 계셨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 아버님께서는 방에 계시던 어머니를 찾아 가셔서 누군가의 부고를 전하셨다. 그 부고는 ‘앤’의 죽음을 알리는 부고였다.
앤은 병원에서 생활을 하면서, 불편함은 있었지만 거동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저녁에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넘어져서 엉덩이뼈가 부러졌고, 그 영향으로 몇 일간 고통을 겪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
|
|
|
출처: penwellgabeltopeka.com |
|
|
앤의 죽음은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충격이 되었다. 그녀의 장례식이 있던 날, 나는 메리에게 앤을 병원에 모셔야 한다고 말했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었는데, 비록 그들이 메리에게 선한 의도로 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남의 일에 ‘감 나라 배나’ 라며 무모하게 참견한 결과가 이렇게 참담하게 나타난 것에 대해 조금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그 날 이후 나는 타인에게 이런 말을 쉽게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게 너에게 최선이야. (그러니 내 말을 들어).” |
|
|
|
*아일랜드 일상다반사
국제결혼을 한 뒤 아이를 키우며 아일랜드의 작은 도시에 살면서 겪고 있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나눕니다.
*도윤
사람을 돕기 위해 공부하고 또 일하며 살다가, 이제는 아일랜드에서 아내이자 엄마로 살고 있습니다. 나를 알고 너를 이해하기 위하여, 그리고 내가 쓰는 글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기를 희망하며 읽고 쓰고 있습니다.
브런치: http://brunch.co.kr/@regina0910 |
|
|
|
* https://allculture.stibee.com 에서 지금까지 발행된 모든 뉴스레터를 보실 수 있습니다. 콘텐츠를 즐겁게 보시고, 주변에 널리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세상의 모든 문화'는 각종 협업, 프로모션, 출간 제의 등 어떠한 형태로의 제안에 열려 있습니다. 관련된 문의는 jiwoowriters@gmail.com (공식메일) 또는 작가별 개인 연락망으로 주시면 됩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