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주파수를 찾아서
물리의 시선, 노다해 |
|
|
과학은 답이 명확해서 좋았다. 처음 과학을 배울 때는 그것이 진리인 마냥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렇게 정답으로만 보였던 과학 지식이 태초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잡초가 수북이 자라있는 들판에서 누군가 처음 발걸음을 내디뎌 샛길을 만들고, 오랜 세월에 걸쳐 여러 사람이 드나들면서 길이 나는 것처럼, 과학도 그렇게 발전했다. 누군가 아직 풀리지 않았던 문제를 처음으로 풀었고, 수백 년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증명하고 확인해서 합의에 이른 지식이 내가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었다.
대학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앞서 길을 터놓은 사람들의 수혜를 입으며 잘 짜인 지식을 편안하게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대학원은 연구자를 훈련하는 교육기관이다. 그러니 이제 나도 낫을 들고 길을 내는 데에 일조해야 했다. 하지만 막상 연구를 해보니 나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일이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내가 맞았는지 틀렸는지 바로바로 확인 할 수 있는 답지가 없으니, 방향을 잃은 기분이었다. 박사를 꿈꾸며 진학한 대학원이었지만, 연구는 내 길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석사로 대학원을 졸업했다.
막상 졸업하고 보니 꼭 연구만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게 아니었다. 일을 하면서 직면하는 문제들은 모두 내가 새로이 답을 만들어내야 했다. 더 나아가면 인생을 살아가는 일 자체가 정답이 없는 일이었다. 그동안 나는 답이 정해진 세계를 안전하다고 느꼈고, 규칙이 명확하지 않은 혼란스러운 세상으로 발을 내딛기 두려워하는 온실 속 화초였다. 더 이상 답이 있는 세상에만 안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의 세상 탐방이 시작되었다. |
|
|
|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협력하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실마리를 얻어 풀어가야 했다. 학교에 다닐 때는 나만 생각했다. 내가 관심 있는 것, 내가 재미있는 것만 좇았다. 애초에 공부의 쓸모를 고려하지도 않았다. 물리학과는 순전히 나의 흥미를 좇아 정한 전공이었다. 하지만 직장을 구하고, 일을 하면서 생각이 확장되었다.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하게 되면서 나의 역할과 쓸모를 고민하게 되었다.
나는 직장에, 더 나아가서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이왕이면 내가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 기여도 하면 좋아할 일이었다. 지금까지는 나의 관심사에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관심을 기울인다고 해서 바로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세상에는 어떤 분야가 있는지, 또 어느 분야가 나와 맞을지 경험해 보아야 했다. 마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여러 채널에 귀 기울여보고, 어떤 채널이 나와 잘 맞는지 알아가듯이 말이다.
라디오는 전파를 타고 전달된다. 관악산 정상에는 라디오 전파를 내보내는 송신탑이 있다. 각 방송사에서 내보내는 라디오는 산 정상과 같이 높은 곳에 있는 송신소에서 전국 각지로 뿌려진다. 마치 태양 빛이 지구 곳곳에 퍼져 집과 사무실의 창문으로 들어오듯이, 송신탑에서 흘러나온 전파도 곳곳에 도달한다. 태양 빛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지만, 라디오 전파는 우리가 들을 수 없다는 차이가 있다. 라디오는 공기 중의 전파를 잡아내어,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소리의 형태로 변형해 준다. |
|
|
|
우리 집에서는 93.1 MHz를 타고 전달되는 KBS 클래식FM 라디오를 많이 들었다. 요즘에는 스마트폰으로도 라디오를 듣기 때문에, 채널명을 선택하면 알아서 주파수를 찾아내서 라디오를 들려준다. 하지만 내가 어릴 적에는 동그란 모양의 다이얼을 돌려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췄다. 컴퓨터도 없고 핸드폰도 없던 어린 시절, 라디오는 아주 훌륭한 장난감이었다.
라디오 채널이 없는 92.5 MHz 같은 주파수에서는 지지직거리는 소리만 들려온다. 하지만 조금씩 주파수를 높이면, 어느 순간부터 지지직거리는 소리 사이로 조금씩 음악이 들려왔다. 다이얼을 계속 돌리면 93.1 MHz 근방에서 음악이 선명하게 들려왔고, 주파수가 93.1 MHz에서 멀어지면 방 안은 다시 지지직거리는 소리로 채워졌다. 이렇게 다이얼을 조금씩 돌리면서 음악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주파수를 찾아내며 놀았다.
클래식 채널이 지겨워지면 다른 라디오 채널을 찾아 나섰다. 그러다 아주 낯선 세계에 들어서기도 했다. 101.9 MHz에서는 BBS의 불교방송이 흘러나왔다. 태어날 때부터 엄마를 따라 교회에 다녔던 나에게 불교 채널은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인 것만 같이 느껴졌다. 왠지 모르게 엄마에게 들키지 말아야 할 찜찜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다시 클래식 채널로 돌아가곤 했다.
|
|
|
|
클래식 채널은 엄마가 나에게 부여한 일종의 안전 영역이었다. 하지만 라디오의 다이얼을 돌리면서 익숙한 클래식뿐만 아니라 가요, 팝송, 재즈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경험했다. 안전하다고 느끼는 영역을 벗어나 라디오의 세계를 탐험하면서 점차 나만의 음악 취향을 만들어갔다.
라디오를 돌려 다른 채널로 이동할 때는 반드시 채널이 없는, 지지직 소리만 나는 영역을 지나게 된다. 명확한 의미라고 할 것이 없는 소리를 듣다 보면, 길을 잃은 채 끝없이 펼쳐진 어둠 속을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계속 다이얼을 돌리다보면 결국에는 또 다른 채널에 도달하게 된다.
그럴 때면 마치 어둠 가운데 한 줄기 빛이 새어들 듯, 지지직거리는 소음 사이로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침내 라디오 소리가 선명해지면, 내 두 발이 땅에 닿은 듯이 현실로 돌아왔다. 익숙한 세계에서 또 다른 세계로 발을 내딛는 일은 이렇듯 부유하는 중간 과정을 거친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정체성이 애매한 시기이다. 하지만 이렇게 어정쩡한 틈새야말로 새로운 세계로 옮겨가는 문턱이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잠시 몸 담았던 직장을 떠나, 인생의 다음 단계로 향하는 과정에 있다. 직장을 떠난 지금, 나는 다시 어정쩡한 주파수 위에 서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방향을 잃은 기분이 들지는 않는다. 라디오 다이얼을 계속 돌리다보면 언젠가는 또 다른 채널에 도달했듯이, 나의 여정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한다. 세상을 탐험하다 보면 언젠가 두 발을 내려놓을 단단한 지반을, 나만의 고유한 주파수를 찾게 될 것이다. |
|
|
|
* https://allculture.stibee.com 에서 지금까지 발행된 모든 뉴스레터를 보실 수 있습니다. 콘텐츠를 즐겁게 보시고, 주변에 널리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세상의 모든 문화'는 각종 협업, 프로모션, 출간 제의 등 어떠한 형태로의 제안에 열려 있습니다. 관련된 문의는 jiwoowriters@gmail.com (공식메일) 또는 작가별 개인 연락망으로 주시면 됩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