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풋 스터디를 시작하다
얼마 전에 동료 작가들과 함께 ‘인풋’ 스터디를 결성했다. 인풋이란 말 그대로 내 안에 들이는 것, 즉 읽거나 보거나 즐기는 등으로 갖가지 콘텐츠를 흡수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보통 인풋이라는 말은 아웃풋을 전제로 하지만 웹소설 작가들이 쓰는 인풋은 그런 고려를 하지 않는 말이다. 보통은 같은 웹소설을 자료조사나 공부 차원에서 읽는 것을 인풋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참여하는 인풋 스터디는 로맨스 판타지 장르 스터디로, 나는 본래 현대 로맨스 작가이지만 장르 변경을 해볼까 해서 참여하게 되었다. 장르 변경은 웹소설 작가들이 종종 하는데 자기 장르를 너무 오래 쓰면 질려서, 혹은 장르가 잘 맞지 않거나 쓰는 족족 결과가 좋지 않아서인 경우가 많다. 나 같은 경우는 이 모든 이유가 다 해당이 되었다. 현대 로맨스 작가로 몇 년간 살면서 많은 작품을 출간했지만 최근 들어 결과가 좋지 않았고, 그래서 그런가 현대 로맨스에 조금 질리기도 하여 다른 장르를 공부해 보고 싶었다.
인풋 스터디에는 조건이 있었다.
- 작품을 비난하지 말고, 타당한 근거를 들어 비판할 것
- 작품에서 단점만 찾으려고 하지 말고 장점도 최대한 찾아볼 것
이런 조건이 나온 까닭은, 보통 스터디에서 정해지는 작품들은 대개 인기작일 텐데 이런 작품을 분석하려다 보면 같은 작가인 까닭에 질투심이 폭발하여 작품을 비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 동료 작가가 다른 ‘인풋’ 스터디에 참가했다가 인기작에 대해서 ‘이런 작품이 대체 왜 인기가 많은지 모르겠다’ ‘유치하기 이를 데 없다’며 작품을 흉보기에 열중하는 것을 보고 그 스터디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러나 보통 인기가 많은 웹소설이 단점이 없어서 그렇게 된 경우는 거의 없다. 단점이 있어도 그것보다 장점이 뛰어나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풋을 한답시고 단점만 나열하다 보면, 이 작품은 도대체가 왜 인기가 많은지 모르는 작품이 되어 버린다. 그러면 ‘나는 이것보다 잘 쓰는데 왜 인기가 없을까’ ‘이런 작품이 인기가 많은 것을 보니 웹소설 업계가 다 죽었다’는 생각에 빠져서 신세한탄만 하다가 자신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는 다 놓치게 되어 버린다.
작품을 분석하면서 알게 된 것들
작품을 분석하는 것이 녹록하지는 않았다. 일단 잘 모르는 장르이다 보니 어떻게 감상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고, 또 내가 주로 쓰는 작품들과는 취향과 성격이 다르다 보니 내게는 재미가 없고 진부하거나 유치하게 느껴지는 요소들도 있었다. 하지만 작품을 비난하지 말고 일단 장점을 억지로라도 찾아보자고 생각했다. 그러니 어떤 작품은 술술 잘 읽히면서 대사들이 맛깔나는 장점이 있었고, 어떤 작품은 여자 주인공이 기죽지 않고 싸움을 잘해서 답답한 면이 없다는 장점이 있었으며, 어떤 작품은 내가 잘 모르는 것들에 대해서 설명을 잘해 주는 장점이 있었다.
장점을 찾고, 또 작품에서 아쉬운 점도 찾아 정리했다. 그러고 나서 다른 작가의 비평글을 읽었다. 혼자 작품을 감상할 때와는 또 다른 관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경험이 쌓이면서 생각지도 못한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내 취향이었다. 어떤 작품이 내게는 매우 진부하게 느껴졌었는데, 다른 작가가 쓴 비평을 읽으니 그 작가는 같은 작품을 매우 재미있게 감상하고 있었다. 이유는 그 작품이 ‘연애 소설의 클리셰’를 매우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연애 소설 클리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처음 알았다. 그래서 그렇게 현대 로맨스가 적응이 안 되고 쓰기 어려웠던 것인가 싶었다.
세상은 내 취향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인풋 스터디를 진행하면서 나는, 세상에 있는 인기작들이 다 내 취향에 맞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은 거꾸로 생각하면, 내 작품이 모든 이들의 취향을 다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과도 상통한다. 이것을 인정하고 나면 글쓰기는 한결 수월해진다. 어설프더라도 일단 내 취향대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 같은 취향의 사람들이 글을 읽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글을 매끄럽게 다듬는 것은 그때부터 하면 된다. 그러나 처음부터 타인의 취향을 좇다 보면 내 취향도 잃어버리고, 재밌게 쓰는 법도 잃어버리면서 나는 결국 글을 쓰는 이유 자체를 상실하게 되어 버린다.
꼭 이런 이야기가 웹소설 작가에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 중에도 취향이 안 맞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나와 맞지 않는다고 하여 그가 세상에 존재하지 말아야 할 인간은 아니다. 나의 취향이 아닌 웹소설도 존재할 수 있듯이 나와 맞지 않는 이들도 존재할 수 있고, 또 내가 쓴 웹소설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듯이 나 역시 모든 이에게 사랑받지 않아도 된다. 이런 깨달음을 가지게 되면 세상에 대해서도, 그리고 나에 대해서도 좀 더 너그럽고 유연한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이미지 출처: https://kr.pinterest.com)
*글쓴이 - 김지영
한때 교직에 몸을 담았다가 그만 두고, 아이를 키우면서 웹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때로 인기 있는 글들을 보며 질투도 하지만 그래도 나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재미를 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며 늘 습작생의 기분으로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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