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나는 세 번째 풀코스 마라톤을 앞두고 있다. 최근에 2025 춘천마라톤 풀코스를 신청했기 때문이다. 2022년 JTBC 마라톤에서 처음으로 풀코스를 완주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30km 이후부터 다리가 돌처럼 무겁고 겨드랑이 살이 쓸리고, 숨은 거칠게 올라왔지만 나는 끝까지 버텼었다. “한 걸음만 더, 괜찮아. 할 수 있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주문을 걸며 결승선을 통과한 순간, 터져 나왔던 안도감과 눈물, 고통 끝에 찾아온 기쁨과 성취감은 아직도 내 몸에 새겨져 있다.
하지만 그다음 해 동아마라톤에서는 21.95km 지점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허벅지에 묵직한 통증이 몰려왔고, 예상치 못한 화장실 신호가 덮쳤다. 잠시 쉬자는 선택은 결국 포기로 이어졌다. “멈추지 않았다면 부상을 입었을지도 몰라”라며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이라는 감정은 오래 남았다. 함께 뛰었던 지인들이 결승선을 통과하는 모습을 보며 한동안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다. 그 이후로 나는 10km, 하프 코스, 트레일러닝 대회에 나가긴 했지만, 풀코스는 감히 신청하지 못했다. 다시 실패하고, 완주하지 못했던 그날의 패배감을 또 마주할까 봐 그랬다.
그랬던 내가, 요즘 다시 풀코스를 앞두며 설렘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이번 도전의 계기는 남자친구의 한마디였다. “우리 풀코스 같이 뛰어볼까?” 툭 던진 그 말이 내 마음 깊은 곳에서 파문처럼 번졌다. ‘함께 연습하면 이번에는 끝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 ‘힘들 때 서로의 등을 밀어주면 버텨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어느새 나는 다시 대회 코스를 찾아보고 있었고, 이미 참가 신청까지 마친 상태였다.
이번에는 예전처럼 무턱대고 달리지 않고, 몸 상태와 일상을 고려해 나만의 훈련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았다. 책과 유튜브, 블로그를 참고해도 나와 딱 맞는 계획을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번엔 조금 다른 방법을 써봤다. 챗GPT에 나의 기록과 목표를 입력해 맞춤형 풀코스 훈련 플랜을 만들었다. 강도와 거리가 점진적으로 늘어나도록 설계된 계획표를 보니 부담이 덜했고, ‘이대로만 연습하면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조금씩 생겼다.
마라톤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달리는 동안 끊임없이 내면의 목소리와 싸우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그만해도 돼”라는 유혹을 이겨낸 순간마다, 나는 조금 더 단단해진 나를 만나왔다. 2022년에 첫 풀코스를 완주한 날에도 그랬다. 결승선을 통과한 나는 예전보다 강해진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번 춘천마라톤에서도 어떤 변수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몸이 지치고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이 분명 찾아올 것이다. 그래도 나는 10월의 춘천을 달리고 있을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오래 걸리더라도 함께 천천히 끝까지 가보자. 결승선에 선 순간, 생각보다 강한 너의 모습을 만나게 될 거야.”
비록 2년 만에 도전하는 풀코스지만, 이번에는 왠지 해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풀코스를 향해 달려가는 지금의 나는 과거보다 조금 더 단단하고, 달리기를 즐길 줄 아는 러너가 되어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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