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미화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첫째를 출산할 때 나는 24시간 진통을 했지만, 크게 소리 한 번 지르지 않았다. 쉬지 않고 눈물이 흘렀던 기억은 난다. 남편의 손을 잡고 내 몸을, 출산을 도와주시는 둘라님과 남편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흐느적거렸다. 남편은 내 몸을 부드럽게 만져주었고, 둘라님은 유독 통증이 심하던 허리에 핫팩을 대주며 아기가 바른 자세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왔다. 나는 멈추지 않는 눈물을 흐르도록 두면서 “언제 끝나나요. 아기가 언제 나오나요” 정도를 읊조렸던 것 같다. 혼자서는 결코 할 수 없었던 그날. 남편, 둘라님, 조산사 선생님, 그리고 밖에서 기다려주신 출산 병원 원장 선생님까지. 모두가 한마음으로 나와 아기의 안전한 만남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목이 마를 때면 물을 마실 수 있었고, 기운이 없는 나를 위해 남편은 중간에 카페에 가서 임신 기간 그토록 먹고 싶었던 딸기 케이크를 사왔다. 임신 기간 중에는 철저하게 식단과 운동을 해야 했지만, 진통 중에는 뭐든 먹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진통 중에는 워낙 힘들어서 딸기 케이크는커녕 혹시 몰라 챙겼던 포도당 사탕만 먹어댔지만 말이다. 진통이 심할 땐 따뜻한 욕조에 들어가 몸을 진정시키니 두어 시간은 또 버틸 만했다. 그러고 나서 출산에도 속도가 붙었던 것 같다. 아마 몸이 충분히 이완되고 편안해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출산이라는 건 지극히 동물적인 거라 엄마의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안정되었을 때 나오는 옥시토신 호르몬의 영향으로 진행이 빨라진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가장 친밀한 관계인 남편의 도움이 절실하다.
첫째 아이를 자연주의 출산으로 낳겠다고 했을 때, 말리거나 우려하는 시선도 적지 않았다. 무통 주사를 맞지 않고, 촉진제 사용이나 회음부 절개, 관장 등 일반적인 자연분만에서는 진행되는 많은 것들이 자연주의 출산에서는 생략된다. 이런 점에서 ‘자연주의 출산’은 가장 자연스러운 분만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자연 분만’과는 다른 출산 방식으로 여겨진다. 자연주의 출산을 하는 많은 사람들은 조리원에 가지 않기도 한다.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신생아실로 가지 않고, 엄마의 품에서 탯줄에 연결된 상태로 엄마 냄새를 충분히 맡으며 진정을 하고, 곧 아빠와 맨살을 맞댄다. 갓난아기가 부모의 품에서 어느 정도 진정이 되면, 그제야 탯줄은 태반으로부터 분리된다. 태반과 연결된 상태로 호흡을 하던 아기는 천천히 폐 호흡을 시작하며 처음 만난 낯선 세계에 적응한다.
“첫째를 자연주의 출산한 사람들은 둘째 때 혀를 내두르고 그냥 무통분만하는 것 같던데”
“집 근처 가까운 곳에서 아기 낳으면 되지, 뭘 그렇게 다른 곳을 멀리 찾아가서 아기를 낳아?”
“무통 주사 맞아도 아픈데, 안 맞으면 너 상상도 못할 거야, 그 고통.”
자연주의 출산을 한다고 했을 때, 모두 실제로 들었던 이야기이다. 주변에서 먼저 출산을 경험했던 이들의 조언이기도 했다. 하지만 건너건너 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자연주의 출산을 했던 사람들의 경험담은 주변의 우려와는 반대였다.
”또 한 번 하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고 싶기도 하고요.”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예요.”
“진통의 파도는 지나가더라고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걱정 말고, 아기를 만나기 전까지 긍정적으로 시간을 보내요.”
24시간 눈물, 콧물 쏙 뺐던 진통이었지만 나 역시 지난 선택에 후회는 없다. 신생아실이 없는 병원에서 아기와 며칠간 한 병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조리원이 아닌 집으로 왔다. 당일부터 와주신 산후 도우미 선생님의 맛있는 밥을 먹고, 남편의 도움을 받으며 붉은 기가 빠지지 않은 연약한 아기와 하루 스무 시간은 꼭 붙어 있었다.
그리고 첫째 아이가 돌이 조금 지났을 때, 나는 둘째를 임신했다. 실수도 아니었고, 남편과 충분한 상의 후에 기다렸던 아이였다.
“이번에도 같은 병원에서 낳을 거야?”로 바뀌어 돌아오는 질문은 아마도 정말로 무통주사를 안 맞았던 게, 조리원에 가지 않았던 게 괜찮았냐는 뜻일 것이다. 나의 대답은 망설임 없이 ‘그렇다’이다. 힘들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힘들고 고단했음에도 불구하고 할 만했고, 또 한 번 같은 방식으로 우리의 새싹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커서일 테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기의 모습을, 갓 태어난 아기에게는 평생이 될 그 시간을 가장 가까이에서 담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도 크고 말이다.
아마 내가 일찍 둘째를 계획할 수 있었던 건 출산에 대한 트라우마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힘들었던 기억은 생생하지만, 아기를 처음 만났을 때의 감격, 축복으로 가득했던 방안의 공기, 모두가 나와 아이의 만남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노력해주었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이 기억들이 내게는 조금 특이하게 다가왔는데, 과장 없이 손수 꾸렸던 나의 결혼식 때보다도 더 스스로가 주인공이며, 주체인 것 같다고 느낀 날이었다.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존중받고, 지지 받았던 경험 중 하나이기도 했다. 온 세상이 나를 돕기 위해, 내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곁에 있는 것 같았다. 출산이 황홀한 경험이었다는 다른 자연주의 출산을 했던 산모들의 말이 내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제 둘째를 만나기까지 백일 남짓한 시간이 남았다. 조금씩 말을 시작한 첫째 아이는 점점 커지는 배를 볼 때마다 “아기!”를 외치며 웃으면서 엄마의 배를 쓰다듬어준다. 둘째 임신은 첫째 때와 다르게, 내 몸을 돌볼 시간이 몇 배는 부족한 게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둘째는 더 쉽다는 주변의 말이 무색하게 나로서는 첫째 임신 때보다 몇 배는 더 힘들게 느껴진다. 그래도 다행인 건, 출산이 두렵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출산은 길어야 하루고, 출산을 도와줄 신뢰하는 사람들이 곁에 든든하다는 걸 안다. 아마도 정말로 힘든 건 아기가 뒤집기 시작하고, 엄마는 불안해 잠을 못 자고, 매일 밤 아기를 재우고 다음날 먹일 이유식을 만드는 짧고도 긴 1년 남짓의 시기가 아닐까 싶다.
첫째 출산 후 불면증으로 오래 고생하고, 하혈도 꽤 오래 했다. 엉엉 울어버리기 전까지는 얼마나 힘든지 몰라주는 남편에게 괜히 화를 내는 날도 잦았고, 때때로 찾아오는 우울감에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기진맥진한 날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려는 용기는, 아마도 아이가 태어난 뒤부터 내가 세상을 조금 더 깊고 진하게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던 순수하고 무해한 작은 존재의 웃음소리, 그 웃음에 함께 환해지는 심장, 이전에는 몰랐던 다양한 자동차의 종류들과 미처 알지 못했던 식재료의 종류들. 내가 평생을 살아온 세상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이 이렇게 많을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밤중에 화장실에 가면 새벽에도 벌떡 일어나 따라 나와 엄마를 기다리며 박수를 치는 이 조그맣고 소중한 존재 덕분에 나는 인생에서 가장 깊이 있고 밀도 높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힘들고 지치는 시간 속에서 삶에서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의미의 사랑을 아이를 통해 배운다. ‘낳아보면 안다’는 어른들의 말을 이제야 조금씩 이해하는 중인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의 밀도, 감정의 진폭, 사랑의 종류까지 모든 게 깊어지는 시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