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먹고 화장실에서 양치 못하는데 다들 치아 건강 관리 어떻게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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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에 올라온 미국 직장인의 고민 사연을 보고 마음이 짠해졌다. 재택 문화가 없이 매일 출근하는 환경인데, 점심 식사 후 회사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기 어려운 분위기라는 것이다. 나 역시 비슷한 분위기 속에서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해왔기에, 저절로 공감이 되어 댓글 타래를 읽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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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많은 댓글이 달렸는데, 내용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뉘었다.
“우리 회사는 양치하는 사람이 있어요.”
“누가 뭐라고 하든 하고 싶으면 하는 거죠. 눈치 보지 말고 그냥 하세요.”
“저도 같은 입장인데, 이렇게 대처하고 있어요.”
나도 3번 유형의 댓글을 달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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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첫 직장이었던 대학 사무실에는 약 10명 정도의 상주 직원이 있었다. 매일 출근하며 5년을 일했지만, 점심을 사무실에서 먹는 동료들은 많아도 식사 후 양치하는 사람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찐 미국인’이라 불리는 로컬이 많은 지역이었고, 나는 금세 그 분위기에 익숙해졌다. 그래서 “화장실에서 양치를 못한다”는 단 한 문장만 보고도 어떤 분위기인지 바로 상상할 수 있었고, 깊이 공감했던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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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일하는 국제기구는 인종 구성이 다양하고, 미국인이 소수에 속한다는 평가를 받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일한 지난 4년 동안,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는 직원들을 가끔 볼 수 있었다. 굳이 숫자로 표현하자면 10명 이내다. 주로 나처럼 한국, 일본, 베트남, 필리핀 등 동양계 직원들이었고, 인종과 관계없이 교정 장치를 착용한다거나 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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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하는 풍경이 스몰토크의 주제가 되기도 한다. ‘왜 양치를 못해?’라는 반응과 함께 “와, 점심 먹고 이를 닦는구나. 깨끗한걸? 좋은 아이디어다!”라는 미국인 동료의 말을 들었다는 댓글도 있었는데, 부정적인 피드백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걸 피하는 미국식 화법을 떠올리면, 과연 그 말을 순도 100%의 칭찬으로 받아들여도 괜찮을까 싶은 의문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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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대놓고 “양치 금지”라고 말하진 않는다. 하지만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먼저 시도하기란 쉽지 않다 아마 이 질문을 했던 사람도 나름의 고민을 오랫동안 했을 것이다. 굳이 이유를 찾아보자면, 문화마다 ‘불쾌하다’고 느끼는 기준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공용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는 일이, 누군가에겐 ‘입냄새를 방지하고 깨끗한 구강을 유지하는 일”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쓰는 세면대에 타액을 튀기는 불쾌한 행위로 보일 수도 있다. 실제로 “더럽게 무슨 짓이냐”는 핀잔을 들은 사례도 있고, “여기서 양치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지도 몰라”라는 조심스러운 충고를 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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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로 ‘개인의 분비물’에 대한 경각심이 더 커진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어쩌면 사무실에서 양치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미국인의 시선은, 공용 화장실에서 발을 닦는 사람을 보는 한국인의 시선과 비슷한 건 아닐까. 두루마리 휴지를 뜻하는 영어 단어가 ‘toilet paper’라는 점을 떠올려보면, 곽티슈나 냅킨 대신 식탁에 두루마리 휴지가 놓인 모습에 기겁했다는 한국 거주 외국인의 경험담도 이해가 된다. 몇년을 살다보면, 그럴수도 있지, 라는 체념 반, 적응 반의 상태가 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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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례들을 접할 때마다, 문화의 차이는 단지 행동 양식만이 아니라 판단의 기준 자체가 다름에서 온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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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에 대한 의학적 권고 기준도 다르다. 한국에서는 하루 3번, 3분 이상, 식후 3분 이내라는 ‘3-3-3’이 익숙하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식후 즉시 양치하는 것이 오히려 치아의 에나멜을 손상시킬 수 있다고 한다. 미국 치과의사 협회는 3-3-3 대신 ‘2-2’, 즉 하루 두 번, 2분씩—기상 직후와 취침 전에 양치할 것을 권장한다. 생각해보면, 아이를 한국에서 미국으로 데려오며 가장 먼저 했던 일 중 하나도 양국의 예방접종 목록을 비교하고 빠진 항목을 채우는 일이었다. 지금도 한국에 가면, 현지 기준에 맞춰 예방접종을 따로 하고 오곤 한다. 양치만이 아니라, 위생과 건강을 바라보는 기준 자체가 다르다는 사실은, 두 문화 사이를 오가며 사는 사람에게 늘 작은 궁금증과 잔잔한 불안을 남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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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생활 10년 차인 나와 남편은 나름의 타협점을 찾았다. 스틱형 가글과 치실의 조합. ‘양치하러 갑니다’라고 광고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찝찝한 기분 사이에서 만들어낸 우리의 선택이다. 고민 댓글 타래에서 나와 비슷한 처지의 동지들을 발견한 것도 반가웠다. 씹는 치약이나 가글을 사용하는 사람, 세면대 대신 변기에 거품을 뱉고 나온다는 사람도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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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처럼 세면대 앞에 나란히 서서 수다를 떨며 양치를 하는 풍경은, 미국 직장에서 아마도 보기 힘든 장면일 것이다. 가끔 한국에 가서 주민센터나 사무실 건물 화장실에 쭉 늘어선 양치컵과 칫솔을 보면, 한국에서의 직장생활이 떠오르며 추억 버튼이 눌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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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 뿐일까, 설거지를 하는 방식도 한국과는 다르다. 대부분 식기세척기가 설치되어 있지만 손설거지를 해야 할 때 미국인과 함께 한다면 기겁을 할지도 모른다. 그들의 설거지는 다음과 같다.
- 싱크대에 설거지할 그릇을 쌓아둔 채로 물을 채운다.
- 그 물에 주방세제를 탄다.
- 그릇을 흔든다.
- 흐르는 물에 헹군다.
여기서 끝이다. 남은 잔여물은 행주나 냅킨으로 닦아낸다. 한국에서 이렇게 설거지를 한다면 엄마의 등짝 스매싱이 날아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식으로 설거지를 한다면 “왜 물을 낭비하냐”는 핀잔을 들을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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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이질감이라는 것도 결국 익숙함의 반대말일 뿐이다. 어떤 행동이 ‘깨끗하다’ 혹은 ‘지저분하다’는 판단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우리가 속한 문화와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한 감각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타인의 일상이 낯설게 느껴질 때, 불편함 대신 호기심을 갖고 들여다볼 수 있다면, 눈쌀을 찌푸리기 전에 “왜?”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면, 우리는 좀 더 살가운 마음으로 같이 살 수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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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에 서서] 황진영
미국 Washington DC에 있는 국제기구에서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우리’를 발견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공저 <세상의 모든 청년>,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 <퇴사하면 큰일 날 줄 알았지> 를 썼습니다.
양 극단으로 보이는 개념들은 어쩌면 서로 맞닿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이에 서서]를 통해 '어쩌면 우리일 수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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