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진학 시 국어국문학과를 선택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마음껏 소설을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마음은 지금도 변치 않고 있다. 국문과는 내 취향에 잘 맞을 것 같았지만 대학에서의 문학 공부는 작품을 분석하거나 비평하는 학문이었다. 게다가 소설가나 시인이 되고 싶은 마음도 없던 나는 문예 창작과 관련한 과목은 멀리했다. 국문과를 졸업했다고 해서 모두가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종종 “전공을 살려 글 쓰는 일을 하시는군요”라는 말을 듣지만 사실과 다르다. 대학 시절에는 창의적인 글을 써 본 적도 없고,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단지 소설 읽는 것을 좋아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어쩌다 보니 뒤늦게 글쓰는 재미를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글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대학 1학년 논술 채점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하여 ‘글쓰기로 먹고사는’ 일을 28년째 하고 있다. 원고청탁, 구술기록, 블로그 체험단, 시민기자, 대필작가, 공모전, 자소서, 탄원서, 인터뷰, 글쓰기 관련 강의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글을 쓰면서 살아가고 있다. “어떻게 글쓰기를 시작하셨나요?” 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첫 원고료는 얼마였는지, 책을 쓰면 얼마나 버는지, 어떻게 일이 연결되는지 등에 관한 질문도 덩달아 이어진다. 글쓰기가 노동이 되고, 글값을 노동의 댓가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한 일인 듯 되묻는다. “그런 일을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그동안 글쓰기로 삶을 이어온 과정을 촘촘하게 살펴보니 단 한 번도 똑같은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경이롭다. 새로운 관점을 글에 담아야 하고, 새로운 대상을 써야 하며, 새로운 일을 부여받는다. 그 속에서 물론 불안함도 계속 나만의 길을 열어간다는 느낌 때문에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시작할 때는 막막하고 앞이 보이지 않다가도 글을 쓰다 보면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기고, 또 다른 세계를 만나게 된다.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고용되지 않은 프리랜서 작가다. 고정 월급을 받으면서 일한 적이 없기 때문에 매번 다른 사람들과 협업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혹은 혼자서 기획하여 시작부터 완성까지 만들어낼 때도 있다. 프리랜서 작가라는 정체성은 꽤나 근사해 보일 때도 있다.
여성학·평화학 연구자인 정희진 작가는 엄마이자 페미니스트이며 작가이고 강연가이기도 하다. 나 역시 아이를 낳고 글 쓰는 일을 하면서 작가의 책이 큰 위로가 되었다. 여성 가장으로서 어떤 삶을 살면서 밥벌이를 하는지 낱낱이 자신의 삶을 공개한 현실적인 이야기는 공감이 되었다. 어떤 강연에서 그간 겪었던 고충과 조언, 작가로서 사는 삶에 대한 솔직하고 털털하게 보여주기도 했다. 여성 작가로서 베스트셀러 작가라 해도 부유하거나 여유로운 경우는 많지 않다.
수십 권의 책을 내고 강연을 이어나가는 정희진 작가도 그러한데, 아등바등 생계를 겨우 유지하는 프리랜서 작가인 나는 오죽할까. 글만 써서 먹고 살 수 없다는 게 현실의 답이다. 그럼에도 계속 글을 쓰고, 작가의 삶을 놓을 수가 없다. 글쓰기를 좋아하니까 글을 쓰게 되었고, 그러다가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면서 먹고 살게 되었다. 무엇이 먼저인지 이제는 기억이 흐릿해졌다. 좋아서 쓰는 것도 사실이지만, 경제 활동을 하면서 일을 이어나갈 수 있어서 쓰는 것도 맞는 말이다.
최근 인기를 끌었던 ‘흑백요리사’는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미국에서도 성공한 에드워드 리 같은 세계적 쉐프가 심사위원이 아닌 참가자 자격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도 신선했다. 에드워드 리는 “실험적인 일을 할 때 다 성공하지 않길 바라요. 그러면 재미없을 거에요. 실험을 하는 이유는 어떤 게 잘 안되는지 보기 위한 것도 있으니까요. 내가 뭘 원하는지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해 알아가는 거에요” 라고 말했다. 자신의 여정을 오랫동안 걸어간 사람들은 끊임없이 실패하며 시도했던 사람들이다. 자신의 일을 진정성있게 이어나가면서 10년, 20년 아니 그 이상 몰두했던 사람이기에 고유함을 갖게 되었다.
진정한 요리 예술가는 고객이 레스토랑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요리를 고르고 즐기는 방법과 요리를 바라보고 먹는 모든 과정까지 하나의 틀을 만들어주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글도 어찌 보면 섬세하게 구조화된 ‘파인 다이닝’ 요리라고 할 수 있으며, 글쓰는 작가 역시 자기만의 요리를 내놓는 쉐프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동안 나의 삶과 일을 융합하고, 사람과의 만남을 글과 연결시켰던 작업은 모두 고유함과 개성을 다듬어 나가는 일이었다.
쓰기를 포기하지 않고, 글쓰기로 먹고 사는 일을 계속 하겠다는 결심을 저버리지 않는 한 작가로서의 삶은 지속된다. 적든 많든 원고료 및 여러가지 형태의 글값을 받는다. 보잘것없는 문장도 쓰다 보면 조금씩 좋아지고, 클라이언트도 괜찮다는 피드백을 주기도 한다. 그러면 또 일이 들어오게 되어 글을 쓰고, 작업 후 통장에 입금이 된다. 근사한 작업실을 가진 작가는 아닐지 몰라도 글을 써서 밥벌이를 하는 작가의 정체성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나는 시민기자, 객원기자, 인터뷰어, 대필작가, 독립출판물 제작, 글쓰기 강사, 논술 선생, 한국어 교사 등의 일을 하면서 글을 계속 썼다. 돈 받고 글을 쓰기도 하지만, 짬짬이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써내려갔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알게 된 것이 있다. 글을 쓰는 순간만 작가의 삶이 아니란 것이다. 글쓰기와 상관없어 보이는 일도 글쓰기의 일부라는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노동하고 생각하는 일 전부 작가의 일이다. 글쓰기는 나를 관통한 경험을 재해석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이었다.
나는 필력이 뛰어나거나 팔로워가 많은 인플루언서 작가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의 글쓰기 업력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 하지만 글쓰기를 취미 이상 직업의 영역으로 이어가면서 생계를 영위하는 것은 아직 소수이다. 이쪽 세계에서 발을 담그고 살다 보니 ‘시장은 넓고, 사람은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글의 분야는 셀 수 없이 많아지고, 장르도 촘촘하고 방대해졌다. 얼마든지 자신만의 영역을 찾아내어 글쓰기를 하나의 커리어로 만들어갈 수 있다.
글쓰기를 통해 단순히 생계를 이어온 것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찾고, 나 자신을 발견하는 여정을 걸어왔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세상 어딘가에는 나의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글쓰기의 세계는 무한한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기에.
글쓴이 : 김소라 작가
좋아서 시작한 인터뷰로 인해 '사람'이라는 자산을 얻었다. 최근 『글쓰기로 먹고살 수 있나요』를 출간하였고, 실제로 28년째 글쓰기와 관련한 여러가지 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나간다. 또한 타로와 책이 있는 명상 공간 ‘랄랄라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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