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는 수업 중에 이명 증상을 호소한 적도 있었다. 텍스트 분량을 줄이고 짧은 글을 함께 읽기로 했지만, 아이는 수업 중 졸기도 했다.
이 아이와 처음 만났을 때, 다시 만나기로 마음먹었던 건 아이와 나눈 대화 때문이었다. 아이에게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뻔한 말 대신, 그저 나자신이 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말했다. 그러자 아이가 물었다.
"만약 평생 책을 못 읽는 거랑 아들이랑 못 만나는 거 중에 선택해야 된다면 뭘 고를 거예요?"
나는 책을 못 읽는 게 엄청 괴롭겠지만 당연히 아들이 더 소중하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아이가 조용히 물었다.
"선생님은 아들이 잘못했을 때 때리진 않죠?"
나는 멈칫했다. 그리고 말했다.
"아니, 때리지 않아."
아이의 질문은 이어졌다.
"아들을 때리는 게 정상이에요?"
나는 분명히 말했다.
"아니, 정상 아니야. 때리면 안 돼."
아이는 엄마가 자기를 때린다고 했다.
내게 아이 엄마는 여느 학부모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적당히 예의 있었고, 일정에 따라 수업 조율 연락을 하는 정도였다. 수업을 하다 보면, 엄마가 남매 중 한 아이에게 언성을 높이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그 뒤로도 남자아이는 '엄마가 동생만 예뻐한다', '엄마가 화냈다', '때렸다' 같은 말을 했다. 아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이의 말 속 상황들이 너무 구체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 집에 고용되어 간 사람이었다. 아이를 구출해줄 수도, 데려다 키울 수도 없었다. 내 역할의 한계는 명확했다. 결국 아이의 보호자는 엄마였다.
아이 엄마는 눈에 띄는 미인이었다. 아이의 얘기를 듣고 잠시, '이 아이는 친자식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했지만 곧 접었다. 아이 얼굴이 엄마를 너무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동생보다도 더 닮았고, 그래서 잘생겼다. 언젠가 내가 아이에게 엄마를 닮았다고 하자, 아이는 얼굴을 찌푸리며 싫은 티를 역력히 냈다.
아이는 불행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한편 이런 생각도 들었다. 부유한 집에, 얼굴도 잘생긴 이 아이는 거의 다 가졌구나. 이런 환경이라면 뭘 하든 원하는 일에만 몰두하며 살 수 있을텐데. 하지만 아이는 고통스러워하며 내게 엄마가 아들을 때리는 게 정상인지를 거듭 묻는 거다.
아이가 질문할 때마다 나는 무력해졌다. 그리고 정상이 아니라고 말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 정도였다. 분명히 말하되, 주어는 뺐다. 물론 결국 같은 말이긴 하지만, 나는 어차피 아이 인생에서 스쳐가는 사람일 뿐이었다.
'엄마가 나쁜 사람'이라고 다른 어른한테 확인 받는 게 먼훗날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아이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소한, '그런 행동은 비정상'이라는 사실만큼은 아이가 알고 있어야 했다. 그래야 언젠가 스스로 뚫고 나올 수 있다.
공감하고 위로한다고 해도, 결국 나는 선생이었다. 책을 읽게 하고 글을 쓰게 하는 사람.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어쩔 수 없는 스트레스 유발자였다. 어쩌면 아이도 수업하기 싫어서 자기 얘기를 종종 꺼낸 걸지도 모른다. 이대로는 수업을 지속하는 게 무의미했다.
사실 그전에도 아이들의 의욕 부족과 태도 문제로 엄마와 상담한 적이 있었다. 그래도 계속 수업해달라는 요청에 억지로 이어가고 있던 셈이었다.
나는 결론을 내렸다. 이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나라도 빠져주는 일이라고. 아이에게 시간을 돌려주기로 했다. 엄마에게는 개인 사정이 있어 그만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엄마는 혹시 다른 선생님을 추천해줄 수 있는지를 물어왔다. 아, 내가 빠진다고 해서 그 시간이 비는 게 아니었구나.
내가 수업을 못한다고 하자, 조금 서운하게도, 남자아이는 너무 좋아했다. 화색이 도는 얼굴로 "언제가 마지막 수업이에요?"라고 물었다. 반면, 의외로 여자아이는 아쉬워했다. 사실 여자아이는 안 하려고 해서 그렇지, 머리는 좋은 아이였다.
요즘도 그 아이들 집 쪽을 지날 때면 혹시나 아이들이 보일까 흘깃 보게 된다. 하지만 그 뒤로 한 번도 만난 적은 없다. 가끔은 생각한다. 선생님이 아니라, 그냥 동네 어른으로 만났으면 어땠을까. 남자아이는 맥도날드를 좋아했고, 여자아이는 편의점 간식을 자주 사먹었다. 우연히 아이들을 다시 마주친다면,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이나 사주고 싶다.
그만둔 지 한 달쯤 됐을 무렵, 여자아이에게 문자가 왔다.
"선생님, 잘 지내요?"
생각해보니, 여자아이가 연락처를 물어봤던 적이 있었다. 나는 잘 지낸다고, 너도 잘 지내냐고 물었더니, 아이에게 다시 답장이 왔다.
"그럼요."
어쩌면, 내 앞에서 울었던 날도 있었고, 새 농구화를 자랑하기도 했던 남자아이는 나를 잊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오만 원 가질래요?"라며 당황시켰던 여자아이는 뜻밖에도 나를 오래 기억했다.
아이들은, 겉만 봐선 정말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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