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여러 날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 온 순간이었다. 이미 여러 날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 온 순간이었다. ‘이제 일어나서 말할 타이밍이야’라고 재촉하는 목소리와 ‘그냥 지나가자’고 타이르는 목소리 사이에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었다. “감사했던 일이나 기도 부탁할 일을 나눠주실 분 없나요?” 청중을 둘러보는 예배 사회자의 눈빛이 내 근처까지 다가오자,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두 손이 꼭 쥐어졌다.
다국적 교회인 우리 교회 예배의 하이라이트는 ‘커뮤니티 나눔’ 순서다. 한 주간 감사했던 일이나 겪고 있는 어려움을 나누는 시간이다. 염소가 새끼를 잘 낳아 감사하다는 고백부터 이혼 후 시가족과의 갈등 같은 무거운 고민까지 깊이와 폭을 가늠할 수 없는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나눔을 들으며 나도 함께 애태우고, 같이 안도하고, 또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우기도 했다. 이야기를 나누고 듣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도 참 좋았다.
하지만 내가 이야기를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다른 사람들이 마이크를 들고 자기 일상을 들려주는 모습은 자연스럽게 느껴졌지만, 내가 백여 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 앞에서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전혀 상상해 보지 않은 장면이었다.
그러다가 일이 생겼다. 평소처럼 주중 교회 소그룹 모임에 참석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보니 나는 내가 저지른 부끄러운 실수를 거리낌 없이 술술 털어놓고 있었다. 그때 문득 ‘아, 이제 완전히 이 모임의 일원이 되었구나’하는 기분이 들었다. 언어나 문화 차이 때문에 늘 반쯤만 속해 있다고 생각해 왔던 터라, 이 자각이 유난히 반가웠다. 평소 바라던 ‘공동체에 소속된 기쁨’이 현실이 되었다는 감동마저 들었다. 그리고 불현듯 ‘커뮤니티 나눔 시간에 이걸 이야기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곧이어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따라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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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쉽게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에게는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 있다. 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발적으로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그랬다. 누군가는 타인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는 것이, 다른 누군가는 일을 미리 끝내놓는 것이, 또는 새로운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이 그러할 테다.
우리가 평소에 하던 행동 방식을 벗어나는 일은 마음속 지진이 나는 것과 같은 경험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두렵고,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하는 귀찮은 마음이 든다. 우리 뇌는 익숙하고 안전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래서 자신을 타이른다. ‘원래 이런 성격이니까.’
우리 성격은 언제부터 이렇게 굳어지게 된 걸까. 브라이언 리틀(Brian Little) 심리학 교수는 사람의 성격은 생물학적 본성, 사회적 본성, 특수한 본성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생물학적 근원’은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특성, ‘사회적 본성’은 사회의 규칙이나 주변 사람들의 기대, 문화의 영향을 말한다. 타고난 내향성, 성실하길 바라는 부모님의 훈육, 먼저 나서주길 바라는 친구들의 기대와 같은 것들이 평소 조용히 있는 편인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지, 순응적인지 혹은 주도적인지와 같은 성격을 만들어간다.
하지만 이에 더해 성격을 결정짓는 것이 있는데, ‘특수한 본성’이다. 특수한 본성은 개인이 가지는 자유로운 특성, 즉 고유한 목표와 동기, 지향점을 말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라거나 ‘성장하고 싶다’, ‘좋은 교사가 되고 싶다’, ‘숲을 보호하고 싶다’와 같은 개인적 열망 또한 내가 타고난 성향과 다른 행동을 하게 만들 수 있다. 그렇게 선택한 행동이 나의 성격을 다듬어간다.
나 역시 ‘원래 나의 성격’과는 맞지 않았지만, ‘공동체에 기여하고 싶다’는 특수한 지향점이 있었다. 내가 그러했듯, 아직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소그룹에 가볼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길 바랐고, 그래서 서로에게 힘이 되는 관계를 경험했으면 했다. 내가 겪은 이야기가 도움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에, 나는 평소의 나와 달리, 사회자를 향해 손을 들고, 마이크를 건네받고,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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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는 순간,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던 고정된 자아개념에 균열이 생긴다. 나는 순응적인 사람인 줄 알았는데, 부당한 상황에서 항의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순응하는 사람’이라는 자기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행동은 강력해서, 단지 어떤 행동에 뛰어드는 것만으로도 그에 걸맞은 기분이나 태도, 자기개념까지 따라오기도 한다. 연구에 의하면, 아무리 내향적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모임에서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나면 스스로를 보다 외향적인 사람으로 느끼고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나는 원래 ‘정리를 못 하는 사람’인데, 타인을 불편하게 하지 않기 위해 흩어진 물건을 가지런히 모으고, ‘말수가 없는 사람’인데, 관계를 위해 감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처럼 기존의 자기개념과 행동 사이에 불일치가 생길 때, 우리는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자신을 새롭게 이해하고 통합하려 한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점차 새로운 ‘나’의 모습을 만들어 나간다.
물론 늘 새로운 행동을 선택할 수는 없고, 그럴 경우 정서적 긴장감 때문에 괴로워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어쩔 수 없다’며 자동적이고 익숙한 반응을 따르기보다, 스스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위해 새로운 행동을 실험해 보면 좋겠다. ‘내가 할 수 있을까’, ‘후회하면 어쩌지’, ‘남들이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두렵고 걱정되는 것이 당연하다. 경험해 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럴 땐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을 멈추고 곧장 ‘경험하기’로 옮겨가도 좋다.
본래의 나와 달리 ‘아니’라고 말하는 용기를 내고, 실수할 위험을 감수하며 시도해 보고, 참고 기다려보는 선택을 할 때, 내가 가진 자유로운 특성이 분명히 드러난다. 그렇게 고유한 나의 모습에 조금씩 더 가까워져 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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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Istock
참고 문헌 브라이언 리틀. (2015). 성격이란 무엇인가. 이창신 역.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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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이지안
여전히 마음공부가 어려운 심리학자입니다. <성격 좋다는 말에 가려진 것들>을 출간하였고, <나를 돌보는 다정한 시간>,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를 공저하였습니다. 심리학 관련 연구소에서 일하며 상담을 합니다.
캄캄한 마음속을 헤맬 때 심리학이 이정표가 되어주곤 했습니다. 같은 고민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닿길 바라며, 심리학을 통과하며 성장한 이야기, 심리학자의 눈으로 본 일상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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