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야기를 만났을 때
내가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언제였을까. 생각해 보니 아주 어린 날부터 인형을 가지고 놀면서 나만의 이야기를 창작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내가 최초로 쓴 이야기도 생각이 난다. 주인공이 미지의 세계에서 무언가 찾아 와야 하는 이야기였는데 길을 가는 중에 그곳을 잘 알고 있는 조력자를 만나서 ‘빨간 동굴과 파란 동굴이 나오면 빨간 동굴로 가고, 빨간 동굴에서 아무것도 만지지 말고 빠져나오고’ 하는 식의 세세한 지시를 받는다. 과연 주인공은 조력자가 말한 대로 해서 무사히 목적한 바를 이루고 집에 돌아올 수 있을까. 생각하며 쓰다 보니 어느덧 노트 마지막장이었다. 당시 미취학 아동이었던 나는 다른 노트에 이야기를 이어 써도 된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가장 흥미진진해야 할 부분을 ‘마법사(조력자)가 시키는 대로 해서 잘 돌아왔다’고 간단히 마무리를 짓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는 기억이다.
그후로도 나는 꾸준히 이야기를 썼다. 공책에, 이면지에, 컴퓨터 자판을 칠 수 있게 되고 나서는 한글 파일에 여러 가지 이야기를 썼다. 학교에서 배운 ‘홍길동전’을 내 나름대로 각색하기도 하고, 당시에 이슈가 되었던 ‘복제인간’ 이야기를 쓰기도 했다. 입시 스트레스가 심했던 고등학교 때는 시험 공부를 하다가 병에 걸려서 더는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수험생의 이야기를 썼다. 그만큼 공부가 하기 싫었던 나의 욕망이 투영된 작품이었다.
아쉽게도 어릴 적에 썼던 이야기들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그럼에도 그 이야기들을 쓰면서 성장했던 나는 남아 있어서 내가 이 일을 정말 좋아한다는 것, 내가 자라서 무엇이 되더라도 이야기만큼은 계속 쓸 것이라는 사실은 희미하게나마 예측하고 있었다. 내가 이런 사실들을 주변 사람들에게도 꽤 말을 하고 다녔는지, 오랜만에 나를 보는 지인들도 ‘요즘 글은 쓰냐’ ‘어떤 글을 쓰냐’고 묻곤 했다. 그들의 머릿 속에서도 나는 늘 무언가를 끄적이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직업인 줄
내가 예측했던 대로, 나는 웹소설 작가가 되었다. 꿈꾸던 ‘작가’라고 불리게 된 기분은 황홀했다. 작품을 쓰고, 계약을 하고, 그 작품을 독자들이 봐주고, 좋은 댓글이든 아니든 나를 작가라고 칭하며 말을 걸어주는 것도 신기하기만 했다. 그저 심심풀이로 글을 끄적이는 것과 직업으로서 글을 쓰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 혼자 취미 생활을 하는 것과, 그것을 당당히 인정을 받는 것은 ‘내가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느낌의 무게감이 달라지는 것을 의미했다.
작가가 되고 난 초반에는 거의 돈을 벌지 못했다. 그래도 재미있어서 썼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구 쏟아내면서 이렇게 연습하다 보면 실력이 늘 테고 언젠가는 돈도 들어오겠지 생각했다. 그렇게 몇 작품을 쓴 후에 안정적으로 꽤 많은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작가 모임 등에도 초대를 받았다. 나는 내가 궤도에 올라섰다고 생각했다. 마치 가수나 탤런트가 한 번 인지도가 쌓이면 대부분 잘 나가는 것처럼(당시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나 역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제 잘 나가는 일만 남았다, 내 작품 원작으로 드라마며 웹툰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더라도 이제 회사원 월급만큼은 꼬박꼬박 들어오겠지. 그런 생각을 했었다. 어리석게도.
인지도가 생긴 연예인이라도 차기작에서, 혹은 다음 앨범에서 충분히 잘 안 될 수도 있다는 것은 내가 그야말로 잘 되고 난 다음 작을 ‘말아먹고’ 난 후에 깨달았다.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나 그래도 팬이 꽤 생긴 것 같은데, 좋아하는 독자들이 있는 것 같은데 다음 작은 왜 잘 안 된 걸까. 분명 같은 작가가 쓴 거고, 내 필력이 한 작품 사이에 줄었을 리도 없는데. 고민을 하다가 차라리 이럴 시간에 한 자라도 더 쓰자고 생각하고 다시 작품을 쓰는데 몰두했다. 그랬더니 차기작은 반응이 좀 더 나아졌다. 그래, 일시적인 슬럼프였어. 다시 좋아질 거야. 기뻐하면서 다음 작을 출간했다. 폭망이었다.
그후로도 이런 흐름은 계속 이어졌다. 잘 되려다가 내려앉고, 이대로 포기할까 싶으면 작품이 전보다는 반응이 좋았다. 그래서 이제는 좀 풀리려나 하고 차기작을 내면 여지없이 결과가 좋지 않았다. 마치 놀림이라도 받는 기분이었다. 가지려고 하면 빼앗고, 그래서 포기하려고 하면 슬그머니 들이미는 것처럼.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어서 계속 썼다. 여행을 가도 썼고 아이가 아파도 간호하면서 썼고 내가 아파도 열이 펄펄 나는 이마를 짚으며 썼다. 여기서 쓰기마저 놓아버리면 지는 것 같았다. 무엇에 지는지 알지 못하면서도 그냥 그럴 것 같았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내가 쓰고 싶은 마음이 중요한 거라고. 돈을 따르지 말고 마음을 따라야 하고, 결과에 좌우되지 말고 내가 행복한 글을 써야 한다고. 하지만 일단 글로 돈을 벌고 나자, 이제는 돈이 안 되는 이야기는 무가치하게 느껴졌다. 이것은 생계의 문제가 아닌 자존심의 문제였다. 내가 작품으로 버는 돈은, 곧 작가로서의 가치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전에는 이만큼 벌었는데 차기작으로 그보다 못 버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다.
이런 시간 속에서 내 직업으로서의 자존감도 곤두박질쳤다. 나는 누군가 내 직업을 물으면 ‘작가예요. 하지만 잘 나가는 작가는 아닙니다.’하고 궁금하지도 않은 2절을 붙였다. 내가 내 직업을 자랑스러워하지 않으니 글을 쓰는 자신감도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분명 글을 쓰고 싶은 것은 맞는데, 내가 원하는 대로만 써서는 안 될 것 같고, 독자들의 입맛에 맞추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내가 뭘 말하고 싶은지도 잊어버렸다. 마치 강연장에 나가서 청중들의 눈치만 보다가 횡설수설하고 강단을 내려오는 강사가 된 기분이었다. 그런 강사는 청중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독자들을 두려워하면서 더 많은 독자들을 잃고 말았다.
당분간 쉬기로 하다
나는 웹소설 쓰기를 당분간 중단하기로 했다. 더는 이러면 안 될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글을 쓰고 또 그것이 출간된 후의 과정들을 보는 것이 견딜 수 없이 힘들었다. 행복하려고 선택한 직업이 나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계약한 작품을 송고한 후에 더는 글을 쓰지 않고 쉬었다. 웹소설 작가로 데뷔를 한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들을 하고 보고 싶은 책들을 보았다. 오랜만에 쉼을 얻은 것 같았다.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심리상담 공부를 하면서 깨달았다. 문제는 작품이 돈을 벌고 안 벌고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 태도에 있었다. 나는 돈을 많이 버는 작가가 ‘좋은 작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좋은 작가가 아니면 작가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스스로를 불행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있었다. 독자의 입맛에만 맞는 글을 쓰려고 전전긍긍하면서 작품을 쓰는 재미조차 잃어가고 있었다.
나는 ‘돈을 별로 벌지 못하는 작가’로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그렇게 되더라도 벼락이 치거나 세상이 뒤집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보다도 내게 중요한 것은 ‘내 이야기를 소수의 독자에게라도 전하는 것’이다. 어릴 적에 내가 인정이나 돈을 바라고 이야기를 쓴 것이 아닌 것처럼. 일단은 잠시 쉬면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찾아 보려고 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주 오랜만에 행복한 글쓰기를 하고 싶다.
사진 출처: https://unsplash.com/
*글쓴이 - 김지영
한때 교직에 몸을 담았다가 그만 두고, 아이를 키우면서 웹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때로 인기 있는 글들을 보며 질투도 하지만 그래도 나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재미를 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며 늘 습작생의 기분으로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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