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두 달 동안, 여러분은 정지우의 기준에서 좋은 글을 쓰셔야 합니다.”
글쓰기 모임의 첫 시간에 매번 하게 되는 이야기다. 나는 어디까지나 이 글쓰기 모임에서 절대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고 못 박는다. 세상에는 어쩌면 사람 수만큼의 ‘좋은 글쓰기’의 기준이 있다. 이 글쓰기 모임에서 좋은 글이 다른 모임에서는 혹평을 받는 글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서점에 가보더라도,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는 글들이 모두 동일한 기준에서 좋은 글이라 말할 수는 없다.
어떤 책은 청소년들이 읽기에는 무척 친절하고 좋은 책이지만, 어른들이 읽기엔 지나치게 구구절절할 수 있다. 어떤 책은 문장이 너무나 유려해서 세계적인 문학상을 받을 정도일 수 있지만, 평소에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잘 읽히지 않고 어려울 수도 있다. 누군가는 단문으로만 가득 채워진 글이 깔끔하고 이해하기 쉽다고 할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는 너무 건조하고 재미없어서 별로라고 말할 수도 있다.
글쓰기 모임도 목적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좋은 글쓰기’의 기준을 매우 폭넓게 잡고, 어떤 글이든 써오면 저마다의 매력을 찾는 모임도 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진행하는 글쓰기 모임은 ‘정지우’가 생각하는 좋은 글의 기본을 갖추는 걸 목적으로 한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시작한다. 그러면서 꼭 덧붙인다. 글쓰기 모임이 끝난 이후 이런 기준은 폐기해도 그만이다, 계속 글 쓰는 사람은 결국 자기만의 기준을 찾아 나갈 수밖에 없다, 글쓰기 모임이 이어지는 몇 주만 ‘하나의 기준’을 익혀보는 것이다, 라고 말이다.
그 기준을 딱 잘라서 정리하거나 이론화하기는 쉽지 않다. 모임원들이 써온 수십 편의 글들을 함께 보고 고치고 판단하면서 좋은 기준이랄 것을 어느 정도 ‘체화’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글쓰기를 수영에 많이 비유한다. 우리가 수영의 이론에 대해 아무리 들어도 수영을 잘하긴 어렵다. 계속하여 물에 뜨는 감각을 익히고 나아가는 연습을 할 때 몸에 ‘체화’되듯이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글쓰기 모임에서 이루어지는 일련의 함께 읽기, 피드백, 고치기 과정을 통해 글쓰기의 ‘기준’도 체화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몇 가지 기준들은 최소한의 글쓰기 기본기를 다지는 데 도움이 된다. 대표적으로 나는 모든 문장을 ‘다’로 끝내는 연습을 해볼 것을 권한다. 우리는 흔히 말하거나 문자 메시지를 쓰다 보면 ‘구어체’에 익숙해지게 된다. 그러나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문어체’를 습득하는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면 일단 모든 문장을 ‘다’로 끝내는 연습만 하더라도, 구어체가 문어체로 어느 정도 교정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밖에도 글을 쓸 때는 항상 ‘문단’으로 쓰는 것을 원칙으로 제시한다. 문장 하나를 쓰고 엔터를 치고, 또 문장 하나를 쓰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문장을 이어서 문단을 만들고, 여러 개의 문단으로 만들어진 한 편의 글을 써보는 걸 목표로 한다. 모든 문장을 ‘다’로 끝내고, 문단들로 글 한 편을 채우자는 것으로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의 최소한은 갖추어진다.
그 다음부터는 사실 끊임없는 실전이다. 나는 글쓰기의 내용을 다루는 방식에서 몇 가지 원칙들을 제시한다. 친절함, 구체성, 솔직함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독자들이 작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가정하고 더 친절하게 자신에 대해 알려줄 것, 무엇이든 더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설명할 것, 가능한 한 스스로에게도 솔직하고 독자에게도 솔직한 마음으로 다가갈 것, 같은 기준들은 매 글들을 보며 이야기한다.
그렇게 한 시절, 열 명 내외의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기준’으로 서로의 글을 치열하게 읽고, 감상을 전하고, 또 고쳐나가다 보면 적어도 그 ‘하나의 기준’에서 좋은 글을 쓰는 일을 익히게 된다. 나는 그렇게 어느 정도 ‘기준’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뉴스레터 <세상의 모든 문화>를 운영하기도 하고, 여러 권의 공저를 쓰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세상의 모든 청년>,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가 있다.
물론, 나와 함께 글을 쓰기 시작했던 많은 작가들이 꼭 내가 믿는 ‘좋은 기준’이 아니라, 저마다의 기준을 만들어나갔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아무런 기준 없이 글을 쓰던 때에서 적어도 ‘하나의 기준’을 익혀보려는 노력이 글쓰기의 중요한 시작이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게 아니다. 유에서 시작하여 유를 고쳐나가면서 자기만의 유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어쩌면 삶의 모든 일이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우리가 혼자서 운전을 잘할 수는 없다. 지인이건 전문 강사건 처음에는 누군가로부터 우리는 운전을 배운다. 그러다 운전에 능숙해지면서 자기만의 운전 방법이 생긴다. 육아도 처음에는 부모나 지인들로부터 보고 배우지만, 곧 자신의 아이에게 맞고, 또 새 시대에 맞는 자기만의 육아법을 찾아간다. 글쓰기도 다르지 않다. 내가 이끄는 글쓰기 모임에는 처음 제시하는 ‘정지우의 기준’이 있다. 그러나 이 기준은 시간이 흘러 저마다의 글 쓰는 사람들 안에서 부단히도 깨지고 부서지고 다듬어질 것을 예정하며 제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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