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화 | 어쩌다 퍼머컬처, ‘따라쟁이’의 시작
아무튼 퍼머컬처_마리
너는 꼭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되겠니. 살면서 꽤나 많이 들어본 말이다.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일하며 살아보겠다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내 오랜 지인들이 보인 반응이기도 하다. 어떤 결정을 해도 너를 믿고 응원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지만, 알 수 없는 표정까지는 숨길 수 그들의 얼굴을 보니, 굳이 그걸 또 해보겠다는 친구가 꽤나 걱정스러웠다 보다.
돌이켜 보면 미국에서 보낸 십여 년의 시간이야말로 내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여행 중 하나 였다. 일 년의 반 이상이 눈으로 뒤덮인 북쪽 동네에서 몇 년을 공부한 나에게, 일 년 내내 햇살이 내리쬐는 남쪽 도시에서 얻은 직장은 그동안의 노고에 대한 선물인 것 같았다. 그렇게 감사한 마음으로, 주 120시간 가까운 노동으로 모든 업무를 해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누군가에게는 부족함이 없어 보였을 내 삶에 대한 물음표를 지울 수 없었다. 매일 더 길어지는 to-do 리스트를 자동 재생하며, 물먹은 오리털 이불 같은 몸을 일으켜 시작하는 아침, 밥 한 끼 편히 먹을 여유도 없이 하루를 보내고도 오늘 다 못한 일과 내일에 대한 불안감에 쉬 잠들지 못하는 밤. 그런 매일이 반복되는 삶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보다 ‘지속가능한 삶’으로 건너가 보자고 결심한 것은, 갑작스러워 보이는 오랜 고민의 결과였다.
결심을 하고 나서도 가장 마음에 걸렸던 것은 가족이었다. 특히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도 자식 셋을 잘 키워냈다는 자부심으로 사시는 엄마와, 조선시대였다면 내 자식뻘이었을 막내 동생이 그랬다. K장녀 증후군이라고도 불린다는, 맏이로서의 자아와 책임감이었을까.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 시골에서 살겠다고 선포했을 때, 그들의 반응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아유 그럼 이제 애 낳고 엄마 가까이에 살 수 있는 거니?”
“오 누나, 그럼 우리 같이 개 키워도 돼?”
마흔이 한참 넘은 나이에 아이를 가지는 건 내 마음대로 안될 일 같고, 강아지는 입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 엄마 친구분 댁에 강아지가 여섯 마리나 태어났단다. 그렇게 나는 십여 년간 나를 둘러싸고 있던 담장 밖 세상으로 나와, 낮은 산자락에 둘러싸인 ‘고풍리’에 사는 멍집사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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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이끈 말들: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다섯 가지 원칙
고풍리 주민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결론부터 말하고 나니, 뭔가 특정 직(職)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능력을 펼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떠오를 것도 같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들처럼 쿨하고 용감한 인간이 아니었다. 몇 년간 온갖 결심과 번복을 거듭하며 내가 지닌 용기를 다 끌어 모아 봤지만, 막상 담장 밖으로 한 걸음을 옮기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결국 나는 자신만의 삶의 가치를 찾아 앞서 걸어 간 많은 이들의 에너지를 빌려 보기로 했다. 그들이 남긴 글 속 삶의 궤적을 따라 한 걸음 씩 내디뎌 보는, ‘따라쟁이’가 되기로 한 것이다.
‘인생의 본질을 직면해 보고자’ 월든 숲 속으로 향했던 헨리 데이빗 소로우; ‘더 올바르고, 더 조용하고, 더 가치 있는 삶’을 위해 시골로 이주해 그들이 정의한 좋은 삶의 원칙을 따라 살아 갔던 니어링 부부; 그리고, ‘오랫동안 자신을 가두었던 자아에서 벗어나 세상이 주는 흐름에 자신을 맡겨보는 실험’을 했던 마이클 싱어 등 이미 시대와 국적을 불문하고 수많은 추종자를 양산해 낸 바 있는 이들이 훌륭한 롤모델이 되어 주었다. 특히 나는 그들의 글과 삶에서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과 맞닿아 있고 가장 큰 울림을 준 것들을 참고해 나의 이 실험적 프로젝트의 지침이 될 다섯 가지 원칙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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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내게 주어진 24시간을 무엇을 하며 어떻게 쓸지 내가 결정한다.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며 자존감을 지키고 살 수 있을 만큼 일해 소득을 얻되, 나머지 시간은 삶을 풍요롭게 재충전하는 다양한 활동에 쓰기로 했다. 내 시간과 에너지를 조직이나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려 모두 쓰는 대신, 나에게 진정한 기쁨을 주는 것들과 함께하는 일터이자 쉼터이자 삶터를 만들어 나가는 데 쓰기로 했다.
둘째, 나 자신에게도, 타인과 공동체에도 이득이 되는 삶을 산다. 첫 번째 원칙을 지키며 얻어진 나의 시간과 공간을 혼자 향유하기보다 그것이 꼭 필요한 누군가와 기쁘게 나누기로 했다. 평화와 즐거움은 확산될 때 더 지속가능해 질 것이다.
셋째, 조급함과 불안함을 내려놓고, 삶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인다. 마이클 싱어는 그의 책에서, 많은 현대인의 삶이 불안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이유는 실제 자신의 통제 하에 있지 않은 많은 것들을 통제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자신을 보호하려는 한 결코 진정한 자유를 이루어 낼 수 없다고 역설한다. 연구실 안팎의 일과 삶 전체를 더 완벽히 통제하고, 더 많은 것을 이룰수록 커졌던 나의 불안의 뿌리를 찾게 된 순간이었다. 나는 싱어가 행했던 ‘삶에 맡기고 순순히 따르는 실험’을 따라, 이전의 나라면 견딜 수 없었을 불확실성을 온 마음과 몸으로 부딪치며 얽매이지 않고 살아 보기로 했다.
넷째, 나 자신과, 주어진 자원들을 다 써서 고갈시켜버리지 않고 스스로 (재)생산 해낸다. 내가 가진 정신적, 신체적 자원은 함부로 써버려도 무한 재생되는 자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또한 언젠가부터 일과 관련된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소비만 할 뿐, 무엇 하나 내 힘으로 고쳐 쓰거나 만들거나 생산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에 나는 인류의 진화 과정에 자연스레 포함되어 있었을 그 능력들을 되찾아 보기로 했다.
다섯 째, 내가 자연의 일부임을 자각하고, 생태계를 구성하는 다른 구성요소들과 공존하기 위해 노력한다. 부끄럽게도, 내 자신이 돌보고 회복시켜 주어야만 지속 가능한 존재임을 깨닫고 나서야, 지금껏 아무 생각 없이 훼손하며 살아온 자연 생태계와 그 (비인간)구성원들의 소중함도 깊이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제라도, 서로 다른 생명이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고 실천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퍼머컬처(Permaculture)를 만나다.
- “집 뒷문 가에 앉아 바라보면, 좋은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이미 우리 주변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햇살과 바람, 사람, 건물, 돌, 바다, 새와 식물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이 모든 것들과 조화를 이루면 평온이, 이들과 대립하면 불행과 혼돈이 찾아 온다.”
- “퍼머컬처란 자연에 맞서기보다는 자연과 협력하고, 오랜 시간의 무분별한 노동보다는 오랜 시간의 성찰적 관찰을 중시하며, 어떤 분야이든 식물과 동물을 단일 생산 시스템으로 취급하기보다는 그들의 모든 기능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철학이다.”
- “우리가 이루어야 할 가장 중요한 변화는 소비에서 생산으로의 전환이며, 그것은 비록 작은 규모라 할지라도 각자의 정원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빌 몰리슨Bill Mollison, Introduction to Permaculture
위에서 언급한 다섯 가지의 원칙을 마음에 새기고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을 즈음, 이미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알고 지침서를 준비한 듯한 호주의 두 아저씨들을 책으로 만났다. 퍼머컬처의 공동 창시자라 불리는 빌 몰리슨과 데이비드 홈그렌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의 책을 읽고, 나는 속으로 확신했다. 따라쟁이의 계보는 19세기 에머슨과 소로우에서 20세기 몰리슨과 홈그렌에게도 이어졌을 것이며, 그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사실, 따라쟁이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새로운 삶을 위한 다짐을 실행에 옮기는 데 꼭 필요한 여러 기술 중, 내가 가진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바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하기 훨씬 이전부터 인류는 도구를 사용해 왔다는 데, 그 능력은 나에게서 이미 퇴화된 것 같았다. 그 뿐이 아니었다. 무엇이 풀인지 꽃인지 나무인지, 열매인지 잎인지 종자인지, 언제 심고 언제 거두는지 아는 것이 없었다. 제3원칙과 4원칙을 곱씹으며 난생 처음으로 전동 드릴과 목재를, 호미와 전정가위와 삽을 들었다. 내 것이 된 시간을 이용해 시골의 문화와 농사를 이해하고, 동식물을 이해하는 법을 처음부터 배워 나갔다. 까막눈을 아주 조금 벗어나자, 튼튼한 등산화를 구매해 매주 진짜 숲을 만나고 배우러 다녔다. 모든 것이 이전의 나라면 시도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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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가을, 다양한 녀석들이 찾아오는 고풍리 텃밭 정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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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4년이 지나간다. 나는 여전히 내 이전의 자아와 새로운 삶,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완전히 떨쳐버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들이 있다. 아침을 맞는 나는 더 이상 물 먹은 오리털 이불 같지 않다. 날이 밝으면 빨리 만나고 싶고, 하고 싶은 것들 때문에 튀어 나가는 물 만난 오리가 되었다. 나의 눈은 이전에 보지 못했던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본다. 내 토마토와 딜을 나눠 먹고 자란 애벌레들이 서로 다른 색의 나비가 되어, 내 보라색 꽃에 앉았다 날아간다. 나의 귀는 이전에 듣지 못했던 것들을 듣는다. 여름 해가 내리쬐는 소리, 밤 기운이 내려 앉는 소리는 매미와 수많은 풀벌레의 음악이다. 그들을 보고 들을 때 마다, 더 큰 무언가를 바랄 수 없을 만큼 풍요롭고 감사해 진다.
퍼머컬처는 이 모든 과정에서 내가 막연히 세웠던 좋은 삶의 원칙을 보다 구체화하고 실천, 적용 할 수 있는 훌륭한 체계와 지침을 제공해 주었다. 현재, 내가 가장 좋아하던 출판사와 함께 퍼머컬처 개념을 국내에 보다 널리 소개하기 위한 번역 작업을 마무리 하고 있다. 대학 밖에서 전공과는 관계없는, '지속가능한 삶과 텃밭과 정원'에 관심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도 만나고 가르치게 되었다. 대문자 'I'이자 혼자 노는 것, 혼자 읽고 쓰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내가 뉴스레터 필진으로 합류하게 된 것 역시, 나의 따라쟁이 프로젝트의 원칙을 지켜 보려는 노력이다. (제2원칙—내게 좋은 것은 다른 이와도 나눈다.) 이는 앞으로 보다 자세히 살펴 볼 퍼머컬처의 3대 윤리 중 하나인 Fair Share와 일맥상통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2화에서는 많은 이들에게 이름조차 생소할 '퍼머컬처'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고자 한다.
[다음 회에서 만나요] 02 | 퍼머컬처Permaculture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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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튼 퍼머컬처 -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실험적 여정에 유용한 길잡이가 되어 준 ‘퍼머컬처(permaculture, 지속가능한 삶, 농림업, 공동체, 문화를 위한 실용적 체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 마리 sustainablelifelab@gmail.com - 커뮤니케이션과 공중보건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health communication이라는 분야를 연구하고 가르쳐왔습니다. 보다 ‘지속가능한 삶’에 대한 고민 끝 4년 전 귀국하여, 산이 아름다운 충남의 한 마을에서 새로운 삶터와 일터를 가꾸어 나가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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