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을 가져가~ 크림 치즈 허니”
로블록스라는 게임에서 쓰이는 밈이 교실까지 들어온 모양이다. 쉬는 시간에 학생들이 꺄르르 웃으며 서로 춤을 가르쳐주더니, 수업 활동 중 벌칙으로 춤추기가 나오면 이때다 싶은 몇 명이 눈빛을 주고받으며 일어나 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춤은 짧지만, 까불거리며 다리를 흔들고 나면 웃음이 한바탕 교실을 쓸고 간다. 이것이 우리 반만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누가 어디서 춤을 배워 왔는지는 몰라도 SNS에서 보던 비슷한 리듬과 춤사위가 우리 교실에도 퍼져 있다는 점이 신기하다. 어쩌면 내가 그런 모습을 신기해한다는 사실이 더 신기한 일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는 꼬마 선장 춤을 다 같이 추는 모습이 귀여워서 ‘저게 뭐지?’ 하고 찾아본 적도 있다.
아이들이 이런 춤을 추는 모습은 즐거운 놀이처럼 보인다. 생각해 보면 내가 어렸을 때도 어른들이 “그게 무슨 뜻이니?” 하고 묻던 유행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유행은 특별한 뜻이 있거나 유난히 웃긴 내용도 아닌데도 어쩐 일인지 널리 퍼진다. 요즘엔 유행이 더 빠르게 퍼지고 새로운 유행도 더 자주 생기며, 그 종류도 다양해졌다. 특히 요즘은 유행을 담은 콘텐츠를 재생산해 다시 올리고 공유하기도 한다.
작년에는 도형을 가르칠 때 ‘울퉁불퉁하다 평평하다’ 노래가 수업 내용과 우연히 맞아서 체면을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불러 수업에 활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주변에서는 그런 유행을 학교에서만큼은 조장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굳이 몰랐던 아이들도 호기심을 가지고 유행에 물들 수 있고, 유행을 모르는 아이들은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주장에도 물론 일리가 있다. 하지만 수학에 전혀 관심 없던 학생도 잠깐 고개를 들게 하고, 친밀감을 바탕으로 수업에 참여하도록 이끌 수 있는 점도 사실이다.
당연히 다 함께 부르고 즐기는 노래나 춤은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현실 세계에서 함께하는 놀이와 활동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경험일 수 있다. 문제는 SNS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춤추는 순수한 즐거움이 SNS에서 관심과 반응을 얻기 위한 콘텐츠로 소비되기 쉽다. SNS에서는 ‘좋아요’를 받기 위한 춤과 노래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반응을 기다리게 된다. 함께 웃고 즐기던 놀이가 어느새 누가 더 많은 관심을 받는지 겨루는 콘텐츠로 바뀌는 것이다. 아이들이 추는 춤을 막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 즐거움이 타인의 평가나 숫자에 좌우되지 않도록, 화면 밖에서도 함께 웃고 움직일 수 있는 놀이를 교실 안에서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심리사회 발달이론에서 에릭슨은 청소년기에 정체성을 형성하는 일이 중요한 발달 과제라고 보았다. 이후 제임스 마샤는 정체성 형성 과정을 탐색과 헌신이라는 두 요소로 설명했다. 언제든 타인과 연결될 수 있는 스마트폰은 건강한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줄 수 있다. 자신의 내면과 가치를 탐색하기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고,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을 다져가기보다 즉각적인 온라인 반응에 기대게 될 가능성도 있다. 밈이나 챌린지 가운데는 비속어가 섞여 있거나, 그 기원과 내용이 초등학생에게 적절하지 않은 것도 많다. 그렇다고 유행을 무조건 금지하기보다, 아이들이 어떤 콘텐츠를 받아들이는지 살펴보고 그에 맞는 지도를 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에는 각 학년 협의실이 한바탕 분주해진 일이 있었다. 바로 학교에 접수된 한 학부모의 건의 때문이었다.
“방과 후 학교에도 아이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휴대전화만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학교는 교육적인 공간인 만큼, 운동장에서의 휴대전화 사용을 제한하는 것은 어떨까요?”
이런 안건은 사실 우리 학교에만 나온 것은 아니었다. 이미 옆 학교에서는 이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한 끝에 방과 후에도 운동장을 포함한 교내에서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다. 교사들은 방과 후 운동장에서 적극적으로 지도했다. 하지만 그 결과, 아이들은 어른들이 바랐던 것처럼 운동장에서 건전하게 놀기보다 학교 앞 빌라 계단이나 상가 앞에서 휴대전화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런 곳들은 골목이나 차도와 가까워 운동장보다 물리적으로 위험했다.
조나선 하이트의 책 『불안 세대』가 떠올랐다. SNS 사용과 아이들의 정신건강 사이의 관계에 대해 분석한 책인데, 실제로 주변 상담교사나 보건교사로부터도 중등으로 갈수록 우울증을 비롯해 청소년 정신 질환이 과거보다 훨씬 빈번해졌고 심각해졌다고 전해 들은 적이 있다. 초등 고학년부터도 밈이나 챌린지 이야기를 하지 않는 교실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고, 운동장에는 폰을 붙잡고 챌린지를 찍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그게 아니면 게임을 하고 있다. SNS 밈을 모르는 학생은 트렌디하지 않고 뭘 모르는, 또래 문화에 동화되지 않는 학생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조나선 하이트가 제안한 어린시절 스마트폰과 SNS 금지 제안에 특히 동의한다. 그러나 내가 부모라면 핸드폰 사용을 쉽게 제한할 수 있을까? 현실에서는 영국이나 호주처럼 사회에서 함께 동의하고 과감하게 제도화되는 것이 아니라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참 어려운 문제다.
우리 반에서는 온라인 밈뿐만 아니라 ‘배고파송’이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춤’처럼 한 아이가 갑자기 추기 시작한 정체불명의 막춤이 유행하곤 한다. 누군가의 행동이 교실 안에서 함께 즐기고 서로 어울리는 놀이로 번져가는 순간이다. 학생들에게 스마트폰을 뺏을 수 없다면 어른들은 그에 따르는 책임을 더 크게 져야만 한다. 운동장에서 방과 후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한다고 아이들의 휴대전화 사용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이들을 더 위험하고 외진 곳으로 밀어낼 수도 있다. 필요한 것은 화면을 빼앗는 일이 아니라, 화면 밖에서도 시간을 보내고 싶어질 만한 공간과 관계를 함께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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