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잘 살고 있었다.
춤추고 운동하고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들로 이루어진 일상이 만족스러웠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해외여행을 할 기회가 생겼다. 그런데 밖에 나가지 않은 지 거의 4년이 되었는데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굳이?'였다. 원래는 해외여행이라면 사족을 못 쓰던 사람이었다.
그래도 거의 2주 동안 쉴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았다. 남들은 다 가봤다는 베트남, 엔저 메리트가 있는 일본, 바다가 아름답다는 필리핀, 괌, 사이판을 차례로 떠올렸다.
그러나 결국 발리에 왔다.
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오래전부터 발리에는 꼭 한 번 와보고 싶었다. 여행 가방에는 로랑 구넬의 《가고 싶은 길을 가라》를 넣었다. 발리를 배경으로 한 책이니 이곳에서 다시 읽으면 좋을 것 같았다.
리조트 수영장 선베드에 누워 틈이 날 때마다 몇 페이지씩 읽었다. 그러다 며칠 뒤에야 알았다. 내가 오래전부터 발리에 오고 싶었던 이유는 인스타그램에서 본 웅장한 리조트 때문도, 발리가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배경이기 때문도 아니었다. 보지도 않은 영화가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을 리는 없다.
나를 발리로 데려온 것은 이 책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발리에서 인상 깊은 무언가를 발견해 뉴스레터에 쓰게 되리라 생각했다. 낯선 풍경이나 사람, 이곳의 문화에 관한 글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결국 나는 오래전에 읽었던 한 권의 책과, 그때는 그냥 지나쳤던 한 문장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가고 싶은 길을 가라》의 주인공 줄리앙은 프랑스에서 교사로 일한다.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던 그는 발리 여행의 막바지에 현자로 알려진 삼턍 선생을 찾아간다.
삼턍 선생은 줄리앙에게 모든 것이 가능한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상상해보라고 한다. 아무런 제약도 없다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떠올려보라는 것이다.
줄리앙은 사진사가 되어 자신의 스튜디오를 열고 싶다고 말한다. 자신이 설계한 집에서 살고, 정원의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책을 읽으며,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살고 피아노도 배우는 삶을 그린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삼턍 선생이 묻는다.
“상상해 본 행복한 삶을 산다면, 지금 잃을 게 있나요?”
줄리앙은 아무것도 없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꿈을 가로막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놀라워한다.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이십 대 후반이었다. 그때의 나는 이 질문을 별다른 저항 없이 지나쳤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 문장 앞에서 멈추었다.
상상해 본 행복한 삶을 산다면, 지금 잃을 게 있나요?
나는 잃을 게 있었다.
지금의 내 삶에는 이미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들어 있다. 함께 살아온 사람들,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온 생활이 있다. 하지만 나는 다른 것들도 원한다. 그것들을 선택하려면 지금의 삶에서 소중한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이 더 소중하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기로 한다.
나는 요즘 춤을 춘다.
춤을 배우기 시작한 뒤 오랜만에 어떤 일에 진심이 되어가는 나를 발견했다. 수업이 있는 날을 기다리고, 음악을 반복해서 듣고, 잘되지 않는 동작을 연습한다. 몸이 음악에 정확히 들어맞는 짧은 순간에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춤을 좋아한다고 댄서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삼턍 선생은 꿈을 구체화한다는 것이 한 범주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관과 일치하는 재능을 표현하며 진정한 자신이 되어가는 일이라고 말했다.
고등학생 때 나는 가수가 되고 싶었다. 실용음악을 배울 수 있는 학교의 보컬 과정에 합격했지만 집안의 반대로 가지 못했다. 오랫동안 나는 가지 않은 길이 결국 내 길이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길도 내 길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이토록 춤추는 걸 좋아하는 것이 가수의 꿈을 꿨던 그때와 연결되어 있을지 모른다.
이십 대의 내 삶이 흰 도화지에 가까웠다면 지금의 도화지는 이미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 어느 정도 채워져 있다. 나는 그것들을 간직한 채 새로운 선과 색을 더하려고 한다.
원하지만 선택하지 않을 수 있고, 선택하지 않지만 여전히 사랑할 수 있다. 나는 지금 가진 삶을 지키면서, 그 안에 내가 원하는 것들을 더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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