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살을 쬐고 오면 주방에서 움직이는 몸이 조금은 더 가벼워진다. 딱히 갈 만한 곳은 없어 둘째를 안고 아침엔 근처 한살림으로 향한다. 말없이 고요한 육아 속 유일한 스몰토크의 장이기도 하다. “아우, 포도 향이 좋아요. 오랜만에 포도가 나왔어요.” “냉장고에 아기 먹을 수 있는 유기농 주스로 만든 젤리 있어요.” “아휴, 오늘은 형아 없이 동생만 왔네~”. 이런 잔잔한 대화가 오간다.
조그만 장바구니를 채워 집으로 오는 길에 오랜만에 옆집 할아버지를 만났다. 옆집에는 서글서글한 인상의 할아버지와 음식 솜씨가 좋으신 할머니께서 사신다. 첫 아이를 낳고, 아이가 새벽에 많이 울어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제주 단호박을 선물로 드린 적이 있다. 다음날, 단호박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단호박죽이 되어 돌아왔다. 아이 기르느라 끼니도 못 챙기는 것 같은데 챙겨 먹으라며 손수 쑤어주신 것이다. 그렇게 달콤하고 따뜻한 단호박죽은 정말로 처음 먹어봤다.
동네 길거리에 특별히 푸드트럭과 미니 바이킹 같은 게 오는 날이면 우연히 만난 옆집 할아버지께서 아이에게 용돈을 주시기도 했다. 우리 가족은 받은 용돈으로 거리에 쪼그려 앉아 신나게 오리 잡기 게임을 했다. 친정도 시댁도 멀리 있어 양가 도움 없이 아이를 기르는 나로서는 그런 이웃의 존재가 참 감사하고 든든하다. 할아버지는 아직 장가를 가지 않은 나이 많은 아들과 함께 사시는데 우리가 아이들을 안고 지나갈 때면 늘 그 아드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신다.
“아휴, 우리 애는 장가를 가야지. 애도 낳고.”
자주 꺼내시는 이야기라 우리는 여느 때처럼 “요즘 결혼 안 하는 사람도 많고, 결혼해도 아이 없이 지내는 부부들도 많은 걸요.” 하고 웃는다. 어르신들은 당신네 자식들이 결혼하고 아이도 낳아야 비로소 안정적으로 산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모두 그만큼은 하고 살아야지.”
“우리 때는 모두 그렇게 살았어. 그래야 다 이만큼은 하고 사는구나 하고 사는 거야.”
모두 이만큼.
모두 이만큼.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누구나 이만큼 밤을 새어보고, 이만큼의 걱정을 하고, 이만큼의 고단함을 느낄 테다. 전보다는 무거워진 책임감을 느끼고, 지칠 대로 지쳐도 보고, 자라나는 아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온몸으로 느껴보기도 하며 말이다.
삼 남매인 우리 집은 옆집 언니 오빠들과 버려진 페트병을 주워 꽃잎을 따넣어 소꿉놀이를 하며 자랐다. 누구 하나 아픈 날이면 옆집 가서 늘어지게 낮잠도 자고 아주머니가 차려주시는 밥도 먹으면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우리를 자기 자식처럼 예뻐해주셨는데 아마도 모두가 그만큼의 삶을 살고 있으니 서로에게 쉽게 품을 내어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이웃이 된다는 건 어쩌면 아이라는 존재로 이어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새싹 같은 아이들의 성장과 고단한 생활이 서로에게 공감의 다리를 놓아준 게 아닐까. 어느새 엄마가 된 나 역시도 처음 만나는 아이들과 그 부모들에게 조금 더 진심 어린 호의와 다정을 건네게 된 것처럼 말이다.
* 글쓴이 - 보배
에세이 <우리의 심장이 함께 춤을 출 때>를 쓰고, 공저 프로젝트로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 <세상의 모든 청년>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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