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GPT 생성 이미지
뜬금없다고 느꼈지만, A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소한 저녁 약속도 아기자기한 소품을 챙겨 이벤트로 만들어 버리는, A의 ‘키워드’라는 제안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약속 날짜는 다가왔고, 우리 셋은 햇살이 가득 쏟아지는 어느 서점에 앉아 한참 수다 꽃을 피우던 중이었다. “이제는 준비한 키워드를 나눠 볼까?” A가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배웅과 마중, 일상을 버티게 해 준 것들’ A가 꺼낸 지난 1년은 스트레스와 위축됨의 연속이었다. 부서를 옮긴 후 만난 팀장은 종종 그녀를 향해 날을 세웠다. 원하는 업무 속도를 내지 못한다며 면박을 주었고, 실수하는 날이면 ‘레드카드’를 언급했다. A는 진짜 퇴장 당하는 기분까지 들었다고 했다. 씁쓸한 표정을 짓는 그녀를 보며 그 순간이 얼마나 불편했을지 상상이 되었고, 무거운 기분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힘들었던 때를 버티게 해 준 순간들이 따라 나왔다. 첫번째는 엄마의 포옹과 함께하는 ‘배웅과 마중’이었다. A는 가끔 출근길에 발이 떨어지지 않고 숨이 막혀올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문 앞에서 그녀를 꼬옥 안아주었는데, 이상하게도 따뜻한 품 안에서 서서히 숨이 쉬어졌다고 했다. 두번째는 ‘출근길, 카페의 사라진 쿠키들’이었다. 무슨말이지? 생각하던 시점,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출근할 때 항상 지나가는 카페가 있거든, 유리창 너머 내가 좋아하는 쿠키가 보이는데 어떤 쿠키가 더 팔렸는지 보면서 사람들의 표정을 상상했어” 그녀는 맛있게 먹고 있는 이의 얼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고, 누군가의 즐거운 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 일상 속에도 이런 순간들이 있니?” 자연스럽게 B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녀의 키워드는 ‘복귀와 나만의 시간’ 이었다. 초등학생 두 아이와 시간을 보내려 신청했던 단축근무가 끝나자 마자 시아버지는 암 진단을 받았다. 남편은 외국에서 일했던 연유로, B는 보호자가 되어 수시로 병원을 오가야 했다. 예약, 진료, 수술, 입원 회복까지. 절대적인 그녀의 ‘시간’은 줄어들었다. 우리는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B는 그래도 가족 옆에 자신이 있어서 다행이었다며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B는 쉬고 있던 운동을 다시 등록했다. 일주일에 세 번, 숨이 차오르고 뚝뚝 땀을 흘리는 시간 동안 만큼은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존재했고, 덕분에 몸과 마음이 단단해졌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야식을 주던 순간도 빼놓을 수 없었다. 늦은 밤, 살이 찔 까봐 음식에 손을 대지 않으면 딸은 아무렇지 않게 “엄마는 날씬하고 예쁘니까 하나쯤 먹어도 돼”라 애교 섞인 말을 건넸다. 나는 아이가 없지만 그 순간이 어땠을 지 짐작할 수 있었다.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엄마의 기분이지 않았을까.
나의 키워드는 ‘외로움과 친구들’이었다. 나는 작년 하반기, 낮에는 회사를 다니고 밤에는 대학원 졸업논문을 마무리했다. 마지막 두 달 동안은 수정할 내용이 많아 자는 시간 빼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기도 했는데, 때로는 손끝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저려올 때도 있었다. 놓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내가 아니면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기에 혼자 버텨야 했고 외로웠다. 하지만 때로는 외롭지 않았다.
나의 일상에는 ‘작은 캐릭터 인형과 글’이 함께였다. 책상 위에는 손가락 한 두마디 정도의 크기에 분홍색 리본을 단 인형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는데, 동그랗고 작은 눈들이 나를 바라보면 이유없이 기분이 좋아졌다. 컴퓨터 배경화면에도 귀여운 캐릭터가 가득했고, 일부러 일주일에 두세번 배경을 바꾸기도 했는데, 그 순간 새 친구를 만나는 기분도 들었다. 글도 썼다. 시간을 내어 정돈된 문장을 쓰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는 지하철 속에서, 때로는 일하다 잠깐 모니터 귀퉁이에 메모장을 열었다. 속마음은 타이핑 속도에 맞춰 와르르 쏟아졌고, 가끔씩 쌓인 감정을 모아 정돈된 글을 만들었다. 헝클어진 마음은 정리되고, 차분함도 따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