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첫째를 낳았고, 6년이 지난 2026년 둘째를 품고 있다. 첫째를 낳았을 때와 둘째를 낳는 지금, 나라가 주는 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그래서 찾아봤다. 지난 육 년 동안 아이 하나를 낳고 키우는 일에 국가가 지원하는 돈은 얼마나 늘었는지.
먼저 임신 출산 진료비 지원금, 즉 국민행복카드 바우처가 60만 원(다태아 100만 원)에서 100만 원(다태아는 140만 원)으로 올랐다. 물론 그사이 병원비도 만만치 않게 오른 것 같지만 말이다.
두 번째는 매달 피부로 와닿는 수당의 변화다. 6년 전 첫째를 키울 때는 가정 보육을 할 경우 양육수당과 아동수당을 합쳐 만 0세 기준 한 달에 최대 30만 원을 받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2023년부터 도입된 '부모급여' 정책은 2024년부터 지급액이 확대되면서, 2026년 현재는 만 0세에 월 100만 원, 만 1세에 월 50만 원을 받는다. 가정에서 양육해 부모급여를 전액 현금으로 받는 경우, 1년이면 만 0세 아이 한 명에게 누적 1200만 원이 들어오는 셈이다. 육아 초기 소득 공백을 메우는 체감 폭이 확실히 다르다. 어린이집을 이용하면 보육료 바우처를 제외한 차액을 받는 방식이다.
아동수당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2020년 당시엔 만 7세 미만까지만 지급됐지만, 2022년 만 8세 미만으로 확대됐다. 2026년 법 개정으로 만 9세 미만까지 확대됐고 2030년까지 매년 한 살씩 늘려 13세 미만까지 갈 예정이라고 한다. 여기에 비수도권과 인구감소지역에는 지역에 따라 추가 지원을 더하는 방식도 마련됐다. 같은 아동수당이라도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받는 금액이 달라지는 셈이다.
게다가 초기 출산 축하금의 단위도 달라졌다. 국가에서 주는 '첫만남이용권' 바우처가 첫째는 200만 원, 둘째부터는 300만 원이 지급된다. 내가 사는 용인시의 경우 둘째아 출산지원금으로 50만 원을 따로 준다. 자녀 수에 따라 지원금이 달라지고, 지자체마다 액수에도 차이가 있다. 같은 둘째를 낳아도 어느 동네에 사느냐에 따라 받는 돈이 달라진다는 건, 곱씹어 볼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도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꽤 든든한 '실탄'이 장전되는 셈이다. (정책 정보는 2026년 기준)
돈뿐만이 아니다. 지난 육 년보다 더 긴 시간 동안, 사회의 공기도 조금씩 변했다. 1990년대, 나는 대구에서 둘째 딸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난 시대에는 딸을 연달아 두 명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축하받지 못하는 일이 있었다. 내 이름에 '아들 동생을 낳으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 사실은, 내가 태어난 시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나는 우리 엄마와 마찬가지로 둘째 딸을 품었지만, 첫째도 딸, 둘째도 딸이라고 해도 "그래도 아들을 하나 낳아야지"라는 말을 듣지는 않는다. 적어도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성별에 대한 해묵은 편견은 분명 옅어졌다.
그런데 문득 생각한다. 국가가 아이를 낳는 데 필요한 돈을 더 많이 지원하게 된 것과, 사회가 아이를 키우는 사람을 더 따뜻하게 대하게 된 것은 같은 문제일까?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다. 여전히 양육자인 우리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것이 있다면, 돈이나 제도로 가려지지 않는 '보이지 않는 선'과 '차가운 시선'이다.
6년 만에 통장에 찍히는 숫자는 분명 커졌고, 밥벌이의 고단함 앞에서 이 지원금들은 실로 크나큰 위로가 된다. 하지만 둘째의 힘찬 태동을 느낄 때마다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은 자꾸만 작아진다. 뱃속의 생명을 품고 내 '몸'은 하루가 다르게 묵직하고 강해지는데, 바깥세상을 향한 내 '마음'은 왜 이토록 약해지는 걸까. 부모의 재력과 정보력으로 아이의 등급이 매겨지는 각자도생의 사회, '노키즈존'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은 세상에서 과연 두 아이를 온전히 지켜낼 수 있을지 두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6년은 어떨까? 우리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2033년쯤에는, 수당 몇십만 원이 더 오르는 것을 넘어 아이를 키우는 일상 속 투명한 장벽들이 허물어져 있기를 꿈꾼다. 아이가 아플 때 눈치 보지 않고 연차를 쓰는 문화, 아이의 미숙함을 날 선 단어로 찌르기보다 잠시 기다려주는 어른들의 여유, 노키즈존보다 예스키즈존이 당연해지는 사회로 변해 있기를 바란다.
나는 두 딸의 엄마로 살아가면서, 아이들에게 세상은 무섭지 않은 곳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 말을 하려면 내가 먼저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아이는 실수하고, 부모는 서툴 수밖에 없다. 그래도 도움이 필요할 때는 주저하지 않고 세상에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내 아이들도 그런 세상에서 자랐으면 좋겠다.
6년 전보다 우리는 분명 더 많은 돈을 받게 되었다. 이제 앞으로의 6년 동안은 우리가 조금 덜 눈치 보고, 조금 덜 불안하고, 조금 더 서로를 믿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돈이 늘어난 만큼, 환대도 늘어나기를. 지원이 커진 만큼, 안심도 커지기를. 그때쯤이면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나도, 지금보다 더 단단한 마음으로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걸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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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명 - 서나연
*코너소개 - 몸이 단단해져야 마음이 마음껏 약해질 수 있다고 믿기에,강해지는 몸의 감각과 약해지는 마음의 물성을 매달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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