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동안 품어 온 한 단어의 힘
사유와 자유의 시간
from. 강동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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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마음에 품은 단어 하나가 10년이라는 세월을 통과하면 어떤 모양으로 피어날까. 최근 김민철 작가의 신작 《오독의 발견》 북토크 진행을 맡으면서, 나는 세월과 함께 한 성장 서사의 실체를 눈앞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북토크를 준비하며 문득 그녀가 10년 전에 출간했던 《모든 요일의 기록》 속 한 구절을 다시 꺼내 읽었다.
"그러니까 그날 밤 내가 '이해'했다고 믿는 문장은 어쩌면 나의 철저한 '오독'에서 비롯된 일일 수도 있다. 선생님의 설명은 안 듣고 내가 내 멋대로 해석하면서 내 세계에 빠져버렸기 때문에 일어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독서는 기본적으로 오독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 오독의 순간도 나에겐 소중할 수 밖에 없다. 그 순간 그 책은 나와 교감했다는 이야기니까. 그 순간 그 책은 나만의 책이 되었다는 이야기니까. 그때 나를 성장시켰든, 나를 위로했든,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든, 그 책의 임무는 그때 끝난거다."
- 김민철, 『모든 요일의 기록』, 위즈덤하우스
무려 10년도 더 된 과거에 그녀는 이미 '오독'이라는 단어를 가슴 깊은 곳에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단어는 정체되어 있지 않았다. 작가가 보낸 10년의 삶과 독서라는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굴러다니며, 더 단단하고 깊은 의미로 영글어왔다. 그 시간의 응축된 힘이 마침내 《오독의 발견》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그리고 사람들과 기꺼이 오독을 함께 즐기는 북클럽으로 탄생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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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를 시작하며 김민철 작가가 던진 첫 고백은 역설적이게도 '망각'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자신이 텍스트화된 것들에 대한 기억력이 유독 좋지 않아, 심지어 본인이 몇 달 동안 고민해서 쓴 카피 한 줄도 잘 외우지 못한다고 털어놓았다. 책을 덮는 순간 내용을 까먹고, 같은 책을 다섯 번 읽어도 주인공 이름조차 헷갈려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치명적인 약점은 엉뚱하게도 그를 가장 집요하고 깊이 있는 독자로 만들었다. 잘 잊어버리기 때문에 그는 책을 읽고 또 읽는다. 오랜 시간 독서를 하며 좋았던 문장들을 하나하나 타이핑하고 나만의 독후감을 남기는 습관을 이어온 것도 그 때문이다. 퇴사 후에는 '오독오독 북클럽'을 운영하며 책을 선정하기 위해 읽고, 레터를 쓰기 위해 읽고, 라이브를 준비하기 위해 또 읽으며 한 권의 책을 네 번에서 여섯 번까지 오독오독 씹어 먹듯 마주한다.
그 과정에서 토니 모리슨의 《재즈》를 다섯 번째 읽을 때야 비로소 숨겨진 사과의 의미를 발견하는 짜릿한 쾌감을 맛보기도 하고, 한강의 《희랍어 시간》 속에서 섬세하게 팽팽함을 견뎌내는 영혼을 마주하기도 한다. 이 지독한 반복과 성실함은, 텍스트 안에서 몰랐던 나를 발견하고 나의 좁은 세계를 확장하는 강력한 근육이 되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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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아니라 기꺼이 '함께' 오독하는 즐거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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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북토크가 유독 특별했던 이유는, 10년 전 홀로 소중히 여기던 '사적인 오독의 순간'이 이제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공적인 축제'로 확장되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2024년부터 '오독오독 북클럽'을 운영하며 독자들에게 "한 줄이라도 좋으니 당신만의 독후감을 보내달라"고 청한다. 답장하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싫어한다던 그가, 독자들이 보내온 정성 어린 오독의 기록들 앞에서는 기꺼이 1 대 1로 모든 답장을 써 내려가는 사람이 되었다.
이 함께 읽기의 장 안에서는 정답을 맞추어야 한다는 오랜 강박과 불안이 단숨에 무너진다. 우리는 학창 시절 내내 '작가의 의도로 올바른 것을 고르시오'라는 문제를 풀며 정답이 있는 독서만을 강요받아 왔다. 책을 다 읽고 덮으면서도 '내가 이해한 게 맞나?' 불안해했던 이유다.
그러나 김민철 작가가 10년의 사색 끝에 우리에게 건넨 메시지는 명쾌하다. 우리는 모두 제각각 울퉁불퉁하고 다르게 생겨 먹었기에, 같은 텍스트를 통과하더라도 누군가는 걸려 넘어지고 누군가는 가슴이 저려올 수밖에 없다. 그 다름을 인정하는 순간, 모든 독서는 오독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순간, 비로소 책을 대하는 진짜 자유가 열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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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마음에게 무리하지 말라고 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그 마음은 무리하지 않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매번 더 무리하며 좋아하는 마음을 더 키워가는 방법밖에 모른다. 심지어 좋아하는 마음을 크게 자랑했더니, 같이 좋아하고 싶어 하는 마음들이 내 주변으로 모여들고 있다. 결국 나는 좋아하는 세상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좋아할 수 있게 되었다. 부족한 나이지만 각자가 다른 방식으로 부족하므로 우리가 모이면 완벽하다."
- 김민철, 『오독의 발견』, 김영사
작가가 책에 쓴 이 문장은 그녀가 10년 동안 걸어온 성장 서사의 결론처럼 들린다. 10년 전 《모든 요일의 기록》에서 나만의 위로와 성장에 머물렀던 오독은, 이제 좋아하는 세상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가꾸어가는 울창한 숲으로 자라났다. 그 무성한 초록의 그늘 아래서 우리는 더 이상 홀로 헤매지 않고, 서로의 곁을 지키며 기꺼이 무모해지기를 선택할 수 있다.
AI의 터치 한 번으로 세상에서 가장 매끈하고 효율적인 정답을 찾아주는 시대다. 하지만 울퉁불퉁한 인간들이 모여 서로 다른 문장에 발이 걸리고, 때로는 엉뚱하게 오독하며 각자의 마음속에 깊은 우물을 파 내려가는 행위는 기계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다.
크레타를 운영하며 수많은 독자들을 만나온 나 역시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때론 구멍이 숭숭 뚫린 오독이어도 상관없다. 그 속에서 나만의 뾰족한 자기다움을 발견하고 타인의 고독과 연결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10년의 세월을 견디며 단단하게 영글어온 김민철 작가의 서사처럼, 우리의 오독 역시 각자의 삶에서 가장 나다운 문장으로 꽃피우기를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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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유와 자유의 시간
골목에서 작은 서점을 운영하면서, 책과 사람이 만나 펼쳐지는 소소하지만 진솔하고, 일상적이지만 이상적인 이야기를 전하려 합니다.
* 글쓴이 - 강동훈
부산 전포동에서 '크레타'라는 작지만 단단한 서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책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책을 읽게 만드는 사람이 되려 노력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책을 잘 파는 서점인이 꿈이자 목표입니다.
* 인스타그램 : www.instagram.com/bookspace.cre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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