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운동을 할 시간도, 책을 읽을 시간도 줄어들고 있다. 한 한달 정도를 어둡게 지냈나 보다. 재미있는 것도 없고, 웃는 것도 지쳐서 사람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로봇처럼 삐걱이며 지냈다.
친절하고 상냥하게 응대할 자신도 없고, 괜한 부정적인 기운만 내뿜어 버릴까 싶어 밖으로 나가는 에너지를 줄이겠다는 심산이었는데, 악순환의 시작이었나 보다. 슬슬 말수도 줄었고, 점점 두더지처럼 땅굴로 깊게 깊게 들어갔다.
아이도 나의 냉랭한 기운을 읽었는지 어쩐지 풀이 죽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나름 모두를 배려하는 감정 조절 방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주변에서는 모든 걸 다 느끼고 있었던 걸까.
그날도 운동을 애매하게 20분 정도 하다가 수유하고, 기저귀를 갈 바에는 그냥 부족한 잠이나 채우자 싶어 아기 곁에 누워버렸다. 짧게라도 운동을 하고 나면 옆구리 살이 허리에 붙는 느낌이 참 좋은데, 운동 며칠 쉬었다고 넓적하고 말랑해진 옆구리가 우울했다. 한낮에도 암막 커튼을 친 캄캄한 방에서 괜히 뒤척이다가 머리맡에 놓아둔 책들을 살폈다. 아기 동화책, 에세이, 육아 서적이 놓여있었는데 그중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정신과 의사가 쓴 운동 책(<운동하면 좋은 걸 누가 모르냐고요>). 아기와 동네 책방에 놀러갔다가 사온 책이다.
작가는 우울과 무기력에 규칙적인 운동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말했다. 책에 따르면 몸과 뇌는 서로를 통제하는데 뇌가 부모라면 몸은 자식이란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고 말이다. 그래, 몸부터 움직여보자. 아무래도 깜깜한 방에서 뒹굴거려서 처지는 게 분명하다. 짬이 날 때면 육아 관련된 책만 읽다가 오랜만에 나를 위한 책을 마침내 손에 쥔 기분이었다. 요즘의 나는 아이를 위해 밥을 먹고, 아이를 위해 책을 읽고, 아이를 위해 잠을 잤다. 물론 운동도 육아를 위해서 했다. 그러니 갑갑했을 수밖에.
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나는 나를 위해 밥을 먹었을 테고, 나를 위해 책을 읽었을 것이며, 나를 위해 잠을 잤을 것이다. 다만 모든 생체 리듬을 아이에게 맞추다 보니 아이가 나인지, 내가 아이인지 모르는 상태로 허우적댔나보다. 그러면서 답답하다고 엄한 데다가 딱딱하게 굴었나 보다. 착각하지 말아야지 싶다.
나는 나의 불안을 없애기 위해 책을 읽는다. 넓적하고 말랑한 허리춤이 싫어서 운동을 한다. 조미료 먹으면 물을 벌컥벌컥 마시게 되는 게 싫어서 내 취향대로 요리를 한다.
기분이 안 좋아질 것 같으면 운동하기 싫더라도 몸을 일으켜세워 1분이라도 플랭크를 하자. 땀이 흠뻑 나고 싶을 땐 잘하지도 못하는 줄넘기를 열 번이라도 돌려보자. 본격적으로 책을 읽을 시간이 없더라도 하루 5분 만이라도 새로운 문장을 읽자! 괜히 육아 책을 읽다가 억울해지면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얼른 펼치면 되는 일이다! 이런 다짐들을 궁시렁대기만 해도 몸에 생기가 도는 것 같다.
짬짬이 운동을 하고, 오랜만에 오랜 취미인 탱고를 추러 나섰다. 아기 둘과 남편이 꿈나라를 헤맬 때 나는 얼굴에 화장품을 5종 이상 발랐다. 얇디얇은 입술을 보송하고 톰톰하게 만들어주는 새로 산 립펜슬도 바르고, 발에 착 감기는 재즈화도 챙겼다. 유기농 디톡스로 얼룩진 몸에 오랜만에 향기 나는 헤어 오일도 발랐다.
탱고 음악을 듣고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고, 내가 유일하게 혼자 있을 수 있는 자동차에서 운전에 흠뻑 취해 있다 보면 다시 가볍게 조잘거리게 되고, 웃음이 피어나면서 행복해진다. 어쩔 땐 드라마 주인공이 된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떨 땐 에어로빅 동지와 파워댄스를 추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쩔 땐 이제는 전생 같은 내 20대가 다시 돌아온 것마냥 실컷 춤을 춘다. 새벽 3시쯤 집에 돌아오면 개운하게 유산소 운동을 한 사람처럼 몸이 가볍다. 덕분에 마음까지 가벼운 건 말할 것도 없다.
아빠 품에서 아기는 꾸벅꾸벅 자고 있고, 나는 수유를 하기 전 바깥 기운을 빼기 위해 깨끗하게 샤워를 한다. 새벽 수유를 하고 나면 네시나 되어서야 잠들 수 있지만 아무래도 좋다. 역시 사람은 움직여야 한다고, 운동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좋아하는 음악에 맞춰 맘껏 춤도 춰야 고단한 육아 노동에 로봇이 되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이라고 풀린 어깨를 보며 흡족해한다.
괜히 애쓰다가 미소를 잃고 로봇 같은 엄마가 되어버리지 말고, 적당히 꾀도 부리고 놀면서 적당히 해맑고 행복한 엄마가 되는 건 어떨까 싶다. 잔잔하고 평화로운 집안의 고요는 사실 엄마의 내면이 풍성하고 체력이 넘칠 때 가능하니 말이다. 우리 가족의 행복은 아무래도 1분의 플랭크와 한밤중의 탱고처럼 작고 단순한 것들이 만들어주는 걸지도 모르겠다.
* 글쓴이 - 보배 에세이 <우리의 심장이 함께 춤을 출 때>를 쓰고, 공저 프로젝트로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 <세상의 모든 청년>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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