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손가락 끝으로 온 세상과 연결된 채, 끊임없이 타인의 말과 정보라는 '소음'을 과식하며 살아간다. 대화와 메시지, 설명과 증명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마음은 늘 과부하 상태다. 몸을 돌보기 위해 요가를 하던 나 역시, 어느 순간 내면의 고요보다 세상의 소음이 안에서 더 시끄럽게 소용돌이치고 있음을 깨달았다. 세상의 볼륨을 잠시 끄는 '우아한 단절'이 간절해진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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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 과식의 시대, 마음에 암전이 필요할 때
오랫동안 요가를 하며 몸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법을 배웠던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익숙한 호흡과 자세 속에서도 마음의 깊은 결이 채 닿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요가 아사나(동작)를 오래 유지해도 내면이 고요해지기보다, 세상의 소음들이 안에서 더 분주하게 소용돌이쳤다.
몸의 정렬을 넘어 마음의 정렬을 바로 세우는 시간, 세상의 볼륨을 잠시 끄는 시간이 간절해질 때쯤 천안 광덕산 자락의 ‘호두마을 위빠사나 수행처’를 찾게 되었다. 단단한 껍질 속에 깊은 씨앗을 품고 있는 호두처럼, 단단한 침묵 속에 사람을 익혀가는 작은 명상 마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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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언, 단절이 아닌 가장 깊은 연결
도착하던 날 숙소 문을 열었을 때 느껴진 첫 감정은 낯섦과 불편함이었다. 눅놋한 공기와 어두운 조명, 세상의 편리함과 단절된 작은 방을 마주하자 내 안의 불만과 저항이 툭 불거졌다. 그러나 청소기를 꺼내 바닥을 닦으며 문득 깨달았다. 이 저항감조차 알아차리는 묵묵한 걸레질이 이미 수행의 시작이라는 것을. 청소를 끝내고 누워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동안, 요가에서 익힌 프라나야마의 리듬이 자연스레 이어졌고, 비로소 외부의 자극 없이 오롯이 나를 들여다보는 고요가 시작되었다.
이곳의 수행은 미얀마 마하시 사야도 전통을 따른다. 핵심은 단 하나, ‘있는 그대로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배가 부풀면 ‘부풂’, 꺼지면 ‘꺼짐’, 생각이 일어나면 ‘생각’이라고 마음속으로 이름을 붙이며 그저 흐름을 지켜볼 뿐이다. 새벽 5시, 법당을 채우는 미얀마어 독송의 진동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좌선이 이어지면 다리의 통증과 잡념이 밀려왔지만 고통조차 현상으로 바라보자 이내 신기하게 물러갔다. 그것은 요가에서 아사나를 오래 유지할 때, 근육의 떨림을 억누르지 않고 인식의 일부로 받아들이던 집중과 닮아 있었다. 위빠사나의 좌선은 내게 ‘움직이지 않는 요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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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날 그룹 인터뷰에서 내가 다른 명상법들을 병행해도 되는지 묻자, 우 소다나 사야도 스님께서는 거미의 비유를 들려주셨다. “거미는 파리를 잡으러 멀리 갔다가도 항상 거미줄 한가운데로 돌아와 중심을 지킨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방향을 바꾸면 떠오를 수 없듯, 위빠사나라는 하나의 방향으로 속도를 올려야 지혜가 생겨난다”는 답변은 늘 무언가를 더 배우고 채워 넣으려고만 했던 내 안의 유목민 같은 본능에 멈춤의 선명한 이정표를 세워주었다.
호두마을에서는 수행 기간 내내 철저한 ‘묵언’이 이어진다. 타인의 시선에 맞추어 나를 꾸미고 증명하던 언어를 내려놓자, 처음에는 외딴섬에 혼자 남겨진 듯 막막했다. 하지만 이 침묵 속에서야 비로소 진짜 치유가 시작되었다. 평소 타인의 목소리와 세상의 소음에 묻혀 들리지 않던 내 안의 미세한 목소리들이 선명하게 고개를 들었다. ‘왜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감정은 어디서 올라오는 걸까?’ 침묵은 단순히 소리를 멈추는 행위가 아니라, 내면의 소음을 비로소 직시하는 용기였다.
사흘쯤 지나자 고요가 익숙해졌고 언어가 사라진 자리에 감각이 깨어났다. 식당에서 숟가락이 부딪히는 소리, 옆 사람의 숨소리가 하나의 거대한 음악처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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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자극적인 대화에 중독되어 있던 감각들이 정화되자, 사소한 모든 것이 ‘대화’가 되었다. 요가에서 말하는 깨어있음의 마음, ‘사티(Sati)’는 바로 이런 침묵의 토양 위에서 자라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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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볼륨을 낮추고 숨을 고른 7일
침묵은 연결의 단절이 아니었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더 깊은 차원에서 세상과 연결되고, 타인과 나를 온전히 포용하게 되는 역설이었다. 일주일이 끝나고 다시 입을 열었을 때 내 목소리가 무척 어색했지만, 불필요한 말과 상처 주는 말을 줄이는 ‘언어의 아힘사(비폭력)’를 경험했기에 그 낯섦조차 귀하게 느껴졌다.
위빠사나 명상 센터에서의 7일은 화려한 깨달음보다는 아주 작은 알아차림들의 연속이었다. 요가 매트 위에서 몸의 정렬이 중요하듯, 이 소음의 시대에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마음의 정렬이었다. 수행은 무엇을 얻거나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겉껍질을 깨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만나기 위한 길이었다.
법문을 마치며 함께 독송하던 팔리어 ‘사두(Sadhu, 훌륭하다, 좋다)’라는 울림을 마음에 새기며 호두마을을 떠났다. 도시의 소음 속으로 다시 돌아온 지금도 호흡이 부풀고 꺼질 때마다 그곳의 시간을 떠올린다. 세상이 시끄러워질 때마다 나는 내 안에 생긴 또 하나의 호두마을 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가 숨을 쉰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가만히 묻는다.
‘지금 이 순간, 나는 깨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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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센터 소개] 호두마을 위빠사나 수행처
호두마을의 지향점:
2001년 9월 개원한 비영리 공익법인 수행공동체로, 종교나 배경에 상관없이 누구나 내면을 돌아볼 수 있도록 열려 있는 공간입니다.
‘위빠사나(Vipassanā)’는 몸과 마음의 변화와 움직임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지혜를 뜻합니다.
프로그램 특징:
미얀마 마하시 사야도 전통을 계승하여 좌선(앉는 명상)과 행선(걷는 명상)을 중심으로 하루 일과가 구성됩니다.
외부와 단절된 집중된 환경 속에서 숙식을 함께하며, 철저한 ‘묵언’을 통해 온전히 자신의 숨결과 알아차림에만 몰입할 수 있는 집중 수행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위치:
충남 천안시 광덕면 광덕리 286-2 (광덕산 자락 위치)
이용 안내:
참여 방식, 숙식 조건, 입문 프로그램 유무 및 비용 등은 시기에 따라 변동될 수 있으므로, 방문 전 센터 측에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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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소라 작가
삶의 숨결을 문장으로 길어 올리는 작가이자, 몸과 마음의 균형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돕는 통합치유 전문가이다.
타로 카드를 매개로 한 심리 상담, 마음챙김 글쓰기, 요가와 글쓰기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치유책방 ‘랄랄라하우스’(주소 : 수원시 권선구 세지로 140번길 45)를 운영한다.
@with__sora https://blog.naver.com/sora77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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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로 먹고살 수 있나요》를 포함하여 현재까지 총 15권의 책을 저술했으며,
'잠시멈춤명상카드' 제작 등
다양한 매체와 공간을 통해 독자들에게 깊은 고요와 깨어있음의 가치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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