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 서서 이런 말을 되뇌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괜찮다"라고 말해도, 괜찮아지지 않는 이유
|
|
|
|
‘나는 사랑받는 사람이다’, ‘나는 가치 있는 존재다’, ‘나는 할 수 있다’. 거울 앞에 서서 이런 말을 되뇌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있다. 한때 이러한 ‘긍정적 자기 진술(positive self-statements)’의 힘이 크게 회자되던 때가 있었다.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이런 문장을 반복하면 다시 강해질 수 있다는 메시지가 유행처럼 번졌고, 상담 장면에서도 종종 권유되곤 했다.
나는 거울 앞에서 말해보았다. “너는 가치 있는 사람이야.” 하지만 그 문장을 끝까지 마치지도 못했다. 민망함은 둘째 치고, 말이 입안에서 자꾸 걸렸다. 거울 속 내 얼굴은 증명사진처럼 내가 아닌 듯 느껴졌다. 아침마다 열 번씩 되뇌면 효과가 있다고 했지만, 나는 한 번도 자연스럽게 해내지 못했다. 결국 ‘긍정적인’ 습관을 만들지 못했다.
그후로도 이런 방식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상담에서 만나는 내담자들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 말이 자신과는 무관한, 공허하고 의미 없는 문장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가 다시 떠오른 것은 K의 말을 들으면서였다. |
|
|
|
K는 회사에서 큰 프로젝트를 떠맡게 되면서 압박감을 크게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이 일을 잘 해낼 수 없을 것 같다는 위기감이 들었고, 유능한 직원이 아닌 것 같다는 자책도 깊어졌다. 어디선가 듣고 ‘나는 할 수 있어’,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 같은 말을 따라 해보기도 했지만, 말할수록 자신을 속이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오래전 심리학자 조앤 우드(Joanne V. Wood)와 동료들은 이런 말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 연구한 적이 있다. 그들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긍정적인 자기 진술을 반복하게 했는데, 그 결과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났다. 기분이 더 나빠진 것이다. 연구자들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다’ 같은 문장은 어떤 이들에게 위로가 아니라, 도달해야 할 기준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그 기준 앞에서 자신을 평가할수록, 오히려 자기평가는 더 부정적으로 기울 수 있다.
물론 이 연구 결과가 모든 상황에 그대로 일반화되는 것은 아니다. 후속 연구들에서는 이 결과를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연구가 던지는 중요한 함의는 분명하다. ‘나는 가치있는 사람이다’ 같은 절대적인 선언이 어떤 사람에게는 오히려 자신을 더 초라하게 느끼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K가 ‘나는 할 수 있어’, ‘나는 충분히 괜찮아’라고 말할 때마다, 그 문장은 오히려 K가 가지고 있던 자기개념과 정면으로 충돌했고, 그 결과 불일치감만 더 크게 느껴졌다. “나는 괜찮아”라고 말할수록, 그 안에서는 ‘아니, 나는 괜찮은 사람이 아니야. 전에도 이러다가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망친 적이 있잖아’라는 목소리가 더 커졌다. |
|
|
|
긍정적 자기 진술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단지 효과가 없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고통을 부인하는 기제로 잘못 작동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할 수 있다’, ‘충분히 괜찮다’같은 말은 자칫 지금 내가 실제로 느끼는 두려움을 회피하게 만든다. 그러나 두려움은 피하려 할수록 더 커지고, 결국 나를 더 강하게 지배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그런 선언을 하게 만든 실패감과 마주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그 감정을 직면하지 않기 위해, 괜찮다는 말을 등에 업은 채 서둘러 달아나려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다시 돌아와야 한다. ‘나는 지금 괜찮지 않다’는 사실 앞에. 내가 스스로를 초라하게 느꼈던 순간, 유능하지 않다고 여겼던 장면, 사랑스럽지 않게 느껴졌던 기억 앞으로 말이다. K에게는 먼저 자신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 필요했다. 맡은 일을 잘해낼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 그리고 그 밑에 깔린 무능하고 무력한 감각을 서둘러 밀어내지 않고 바라보는 것이다. |
|
|
그다음에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겨 질문해 볼 수 있다. ‘나에게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는 정답이 없다. 조직에 기여하고픈 마음일 수도 있고, 인정받고 싶은 바람이거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기쁨일 수도 있다.
K에게는 동료들과 협업하며 일하는 기쁨이 중요했다. 나는 K에게 최근 그 가치가 잠시라도 실현되었던 순간을 떠올려 보라고 했다. 그는 몇 달 전 회의에서 동료들과 함께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끝내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 냈을 때의 희열을 이야기했다. 그 장면을 말하는 동안 K의 표정은 조금씩 밝아졌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이번 주 회의 때는 일부러라도 농담을 한 번 해봐야겠어요.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시작해 보자고 말해야겠어요.” 가치를 떠올린다는 것은 때로 마음을 다독이는 일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 가치가 살아 있던 순간을 다시 만나는 일은, 그 방향으로 한 번 더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온다. K 역시 그 순간, 자신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증명하려 하기보다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싶은 사람인지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
|
|
이런 과정을 사회심리학자인 클로드 스틸(Claude M. Steele)는 자기확언(self-affirmation)이라고 불렀다. 자기확언은 자아가 위협받을 때,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와 정체성을 다시 확인함으로써 자아의 안정감과 통합성을 회복하려는 과정이다. 핵심은 실패의 순간에 ‘나는 잘하고 있다’, ‘나는 잘할 수 있다’고 되뇌는 대신,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주의를 돌리는 데 있다. 그 가치가 지금의 문제와 직접 관련이 없어도 괜찮다. 관계를 지키고 싶은 마음, 공정함, 창의성처럼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그 가치가 실제로 살아 있었던, 아주 사소한 순간들을 떠올리는 것이다. 친구의 말에 오래 귀 기울였던 순간, 불편했지만 솔직하게 말했던 순간, 아무도 보지 않는데도 공들여 무언가를 만들었던 순간. 그 순간의 나는 이미 내 삶을 충분히 의미 있게 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다시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한껏 취약해진 나머지, 밀려오는 두려움을 어떻게든 막아 보려고 ‘나는 괜찮다’는 방패를 집어 들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괜찮지 않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 내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인지를 기억하는 일이야말로 무너진 마음을 다시 일으키는 더 단단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
|
|
* 이미지 출처 Istock
* 참고 문헌 Cohen, G. L., & Sherman, D. K. (2014). The psychology of change: Self-affirmation and social psychological intervention. Annual Review of Psychology, 65, 333–371. Wood, J. V., Perunovic, W. Q. E., & Lee, J. W. (2009). Positive self-statements: Power for some, peril for others. Psychological Science, 20(7), 860–866.
* 글쓴이 - 이지안
여전히 마음공부가 어려운 심리학자입니다. <감정 글쓰기>, <성격 좋다는 말에 가려진 것들>을 출간하였고, <나를 돌보는 다정한 시간>,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를 공저하였습니다. 심리학 관련 연구소에서 일하며 상담을 합니다.
캄캄한 마음속을 헤맬 때 심리학이 이정표가 되어주곤 했습니다. 같은 고민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닿길 바라며, 심리학을 통과하며 성장한 이야기, 심리학자의 눈으로 본 일상 이야기를 전합니다.
|
|
|
|
* https://allculture.stibee.com 에서 지금까지 발행된 모든 뉴스레터를 보실 수 있습니다. 콘텐츠를 즐겁게 보시고, 주변에 널리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세상의 모든 문화'는 각종 협업, 프로모션, 출간 제의 등 어떠한 형태로의 제안에 열려 있습니다. 관련된 문의는 jiwoowriters@gmail.com (공식메일) 또는 작가별 개인 연락망으로 주시면 됩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