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게 모르게 우울했나 보다. 물먹은 솜처럼 축 처져선 집안에 있는 게 답답했다. 간혹 남편하고 다투기라도 하는 날이면, 다툼의 씨앗들이 곳곳에 뿌려진 집이 더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아침이면 햇살을 쬐고, 밖에 나가 달리기라도 실컷 해 땀을 뻘뻘 흘리고 싶었다.
3주 동안 월요일 오전에 육아를 하는 엄마들끼리 책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첫 모임에서의 질문이 “당신의 상태를 색깔로 표현한다면?”이었다. 회색이라고 생각했고, 나 자신의 색깔은 육아에 묻혀 사라졌다고 느끼던 참이었다. 일부러 주말 낮에 혼자 나가 자전거를 타고 영화관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달콤 짭짤한 캐러멜 팝콘도 먹고, 천만 관객이라는 최신 영화도 봤다. 즐거웠지만 마음이 바빴다. 아이들이 낮잠에 깨서 울고 있지는 않을지 틈틈이 홈캠을 확인했다. 짧은 외출을 하는 것도 엄마에게는 필요한 것들이 많다. 이를테면 용기나 여유로움, 그리고 남편에 대한 신뢰 같은 것들 말이다.
출산 후 140일 정도는 아기가 엄마 없이는 배를 채울 수도 없고, 고개를 가누기도 어렵다고 늘 노심초사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항상 집에서 아이와 24시간 붙어 있어야 한다고, 모든 돌봄 행위에 항상성을 부여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는 매분 매초 성장하고 있다. 엄마가 없어도 고개를 가눌 수 있고, 아빠 품에서도 울지 않고 눈 맞추고 놀 수 있으며, 수유 텀도 4~5시간으로 늘었다. 신생아 시기처럼 2시간에 한 번 수유를 하지 않아도 되고, 잠자지 않고 놀 수 있는 시간도 꽤 길어졌다. 우울감은 아마 내가 집에 없으면 절대로 안 된다는 착각을 하고 있을 무렵 시작되는 것 같다.
그래, 나가도 된다.
아빠가 주양육자인 엄마만큼 아이의 요구를 빠르게 알아차리기는 어렵겠지만, 지구상에서 엄마 이외에 우리 아이를 가장 사랑하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아빠일 것이다. 아빠가 아이를 잘 돌볼 거라는 믿음과 여유로움도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의식적으로 노력이 필요하다. ‘밥 먹는 시간이 조금 늦어져도 괜찮아. 간식 정도는 놀다 보면 잊을 수 있지. 목도리 정도는 하지 않고 산책할 수도 있어’ 같은 빈틈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가라앉은 기분을 풀게 만들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햇살, 충분한 수면, 운동, 책 읽기, 친구들 만나기, 글쓰기, 새로운 걸 배우기, 감사하기, 좋은 음식을 먹기, 춤추기처럼 나의 일상에 활력을 부여할 수 있는 것들.
잠깐이라도 아이를 안고 근처 카페에라도 낮에 다녀오고, 밤에는 핸드폰을 멀리 두고 수면 안대를 하고 푹 자고, 낮 시간에는 짬짬이 운동을 했다. 운동 후에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을 때 풀린 몸의 감각, 책 모임에 참여하며 책도 읽고 사회적 연결이 되는 순간들, 그리고 내가 좋아했던 것들에 대해 떠올리기. 나를 잃지 말자는 다짐이기도 했다. 이제는 임부복을 버리고 날씬해진 몸에 맞춰 다시 쇼핑을 해야겠다고, 피부 관리도 열심히 하고, 잊고 지내던 취미 생활도 다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엄마가 행복할 때 아이들도 밝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고 되새겼다. 정말 그랬다.
동갑내기 아이를 기르는 오랜 친구를 초대해 떡볶이와 빙수를 시켜 학생 때처럼 실컷 수다를 떨고, 운동도 하고, 예쁜 옷도 샀다. 오랜만에 취미 생활이던 탱고를 추러 홍대까지 다녀오니 그제야 육아에 회사 일에 짙은 회색이 되어버린 남편의 얼굴도 보였다. 두 아이의 부모가 되고, 적응하는 시간 동안 우리 두 사람 모두 자신을 챙길 여력이 없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서로에게 자신들을 챙겨달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인생에 커다란 변화가 생기고 나면, 처음에는 충격에 분노하고 거부하다가, 추억(타협)하게 되고, 수용하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열린 공간이 생기게 되면서 새로운 세계가 세워지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인생의 큰 변화 앞에 적응해야 하는 우리는 아직 미숙한 부모이기 때문일 테다. 완성된 부모가 이 세계에 존재하긴 할까. 모두가 정답을 모르는 상태로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생각에 닿게 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완벽을 꿈꾸지도, 육아를 낭만화하지도 않고 나면 어쩐지 집안에서 온 가족이 지지고 볶는 이 순간이 애틋해진다.
모두가 그래. 나는 죽을 때까지 완벽해지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우리 네 가족 다 같이 꾸준히 세상을 마주하면서 배우고 성장하다 보면 그 사이에 다정한 경험도, 우리만의 추억도 쌓이게 될 거라고 또 한 번 내려놓는다. 멀리 오래가기 위해 한 템포 쉬며 여유로움을 연습해 봐야지 싶다. 인생에 단 한 번뿐일 이 복작한 사랑의 시기가 회색 빛보다는 우리 네 가족만의 아름다운 색으로 남기를 바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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