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KBS·MBC·SBS 등 지상파 3사가 ‘챗GPT’를 개발한 OpenAI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오픈AI가 수십 년간 축적된 방송 뉴스 콘텐츠를 허락 없이 인공지능 학습에 사용했다는 이유에서다.
국내 언론사가 글로벌 AI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방송사들은 “뉴스는 수많은 기자와 제작진이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핵심 자산인데, 이를 무단으로 학습에 활용하는 것은 정당한 혁신이 아니라 저작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사건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AI가 세상의 수많은 글과 노래를 ‘학습’하는 것은 정당한 공부일까, 아니면 창작물을 무단으로 이용하는 새로운 형태의 침해일까?
이 문제는 이미 세계 곳곳에서 법적 분쟁으로 번지고 있다.
1. "그대로 베껴 출력한다면 공부가 아니다" (독일 GEMA vs OpenAI)
유럽에서도 비슷한 논쟁이 진행 중이다. 독일의 음악 저작권 관리 단체인 GEMA는 오픈AI가 가수들의 노래 가사를 무단 학습했다며 소송을 걸었다. 2025년 11월, 독일 뮌헨지방법원은 매우 상징적인 결론을 내렸다. 법원은 오픈AI의 행위가 저작권법상 복제권 및 공중이용 제공권(전송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독일 저작권법 제44b조(Text und Data Mining)는 적법하게 접근 가능한 저작물에 대해 텍스트 및 데이터 마이닝을 위한 복제는 허용되지만, 저작권자가 이를 명시적으로 거부(Opt-out)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 판결에서 법원은 이 면책 규정을 인정하지 않았다. 챗GPT가 노래 가사를 단순히 분석하는 수준을 넘어, 원문과 거의 똑같은 결과물을 출력했기 때문이다. 법원은 AI가 저작물을 그대로 복제하는 행위는 법이 허용하는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저작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2. "결과가 달라도 출처가 불법이면 유죄다" (미국 작가단 vs 앤트로픽)
미국에서도 작가들이 AI 기업을 상대로 잇따라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소설가들이 '클로드'를 만든 앤트로픽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2025년 9월, 캘리포니아 북부 연방법원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AI가 책 내용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고 요약이나 분석을 하는 '변형적 이용'은 인정했다. 즉, 책 시장을 대신해서 팔아먹는 수준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공부 재료'였다. 앤트로픽이 학습에 쓴 책들이 불법 복제물(해적판) 사이트에서 가져온 데이터라는 점이 발목을 잡았다. 미국 저작권법 제107조(Fair Use)는 이용의 목적과 성격, 저작물의 성격, 사용된 양, 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하여 공정이용 여부를 판단한다. 법원은 AI의 결과물이 독창적일지라도 그 학습 과정에서 '훔친 장부'를 썼다면 정당한 이용으로 볼 수 없다는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였고, 앤트로픽 측은 창작자들에게 최소 15억달러(약 2조원)를 배상하기로 합의했다.
3. 대한민국에서도 시작된 거대한 싸움: 지상파 3사 vs 오픈AI
이러한 글로벌 법적 흐름은 2026년 2월, 우리나라 지상파 3사가 오픈AI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배경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방송사들이 법정으로 향한 이유는 단순히 감정적인 대응이 아니다.
첫째, 뉴스 콘텐츠는 공짜가 아니기 때문이다. 방송사들은 수십 년간 막대한 인력과 자본을 투입해 뉴스를 만들었다. 오픈AI가 이를 대량으로 수집해 학습에 쓰고, 답변 과정에서 기사 내용을 거의 그대로 노출하는 경우 방송사들의 자산이 침해될 수 있다.
둘째, 글로벌 기업의 '차별적'인 태도다. 오픈AI는 미국의 뉴스코퍼레이션 등 해외 대형 언론사들과는 이미 거액의 유료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뉴스 데이터를 쓰는 데 돈을 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한국 언론사들의 협상 제안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차별적인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데이터 주권'을 지키기 위해서다. 거대 자본을 앞세운 외국 기업이 타국의 지식 자산을 무단으로 가져가 상업적 이익으로 바꾸는 행위를 방치한다면, 우리 콘텐츠 생태계는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
4. AI 시대, 창작자는 무엇을 보호받을 수 있을까
AI는 분명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할 혁신적인 기술이다. 하지만 그 혁신이 누군가의 피땀 어린 창작물을 무단으로 가로채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AI 기술의 발전과 창작자의 권리가 충돌하는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중요한 법적 쟁점이 될 것이다.
지상파 3사의 이번 소송 역시 단순한 기업 간 분쟁을 넘어, AI 시대에 창작자의 권리를 어디까지 보호할 것인지 묻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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