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은 단순한 자기 확신이 아니다. 어느 날 저녁, M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한숨을 쉬었다. 대학 동기의 SNS를 본 직후였다. 친구는 얼마 전 외국계 회사로 이직했고, 회사 로고가 박힌 사원증을 목에 걸고 환하게 웃는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댓글에는 "멋지다", "역시 너다", "자랑스럽다"와 같은 말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M은 입에 물고 있던 초콜릿이 더 이상 달지 않게 느껴졌다. "나는 왜 이렇게 뒤처진 것 같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평범하고 괜찮은 하루였다. 회사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소파에 앉아 디저트를 먹으며 쉬고 있었다. 그런데 친구의 사진 한 장으로 갑자기 기분이 푹 꺼졌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데, 갑자기 무언가 부족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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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신의 삶이 괜찮은지 어떻게 판단할까. 오래전부터 심리학자들은 사람이 자신을 이해할 때 자기만의 절대적인 기준보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 더 많이 의존한다고 설명해왔다. 능력, 성취, 행복 같은 것들은 키나 몸무게처럼 수치로 측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타인의 상태를 기준 삼아 자신의 위치를 가늠한다.
M이 느낀 감정도 그런 비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타인과의 비교는 자신에 대한 가치감, 즉 자존감마저 흔들어놓는다. 심리학자 마크 리어리(Mark Leary)는 자존감은 ‘내가 사회 안에서 얼마나 잘 받아들여지고 있는가’를 감지하는 내면의 계기판이라고 설명한다. 즉 자존감은 단순한 자기 확신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얼마나 잘 수용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신호라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가치 있는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때 자존감은 올라간다. M의 자존감이 SNS를 보는 순간 즉각적으로 흔들린 것도, 이 계기판이 ‘저 친구는 더 인정받고 있고, 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위험 신호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존감은 사회적 기준과 완전히 분리될 수 없는 감각이다. 사회가 바라는 인간상이나 높게 평가하는 가치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M에게 순간 작동한 기준도 그녀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라기보다, 사회 속에서 자연스럽게 익힌 것일 가능성이 크다. 사회는 끊임없이 ‘가치 있는 삶’의 기준을 제시한다. 높은 연봉, 누구나 알 만한 회사,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성공. 우리는 자라면서 이런 기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문제는 그 기준이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인지 묻기도 전에, 그것을 당연한 잣대처럼 받아들이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그 기준에 맞추어 자신을 평가하며 살아가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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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는 단순히 거울 앞에 서서 "자신감을 가지자"라고 되뇌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한 걸음 물러나 내가 어떤 기준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지 묻는 것이 필요하다. 그 기준이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정말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물론 이런 기준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기는 어렵다. 사회가 부여하는 잣대는 공기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 기준이 사회에서 배운 것인지 내가 가치하게 여기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때도 많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그 기준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기준이 보이지 않을 때 비교는 곧바로 ‘나는 부족하다’ 라는 자기 평가로 이어지지만, 기준을 의식하는 순간 그 자동적인 연결이 조금 느슨해진다. 그리고 과연 나에게 중요한 것인지 의심해보는 여유가 생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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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기준 자체를 바꾸는 것도 가능할까. 다시 한 번 우리는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스스로를 판단한다는 점에 주목해 보자. 이때 비교 대상은 저 멀리 있는 유명인이나 재벌 누구가 아니다. 친구나 이웃, 직장 동료처럼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이다.
우리는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태도와 가치를 자신도 모르게 내면화한다. 예를 들어 연봉이나 승진, 커리어 계획 같은 이야기가 자주 오가는 환경에 있다면, 자연스럽게 성취와 성장 같은 가치가 중요하게 느껴지기 쉽다. 하루를 얼마나 생산적으로 보냈는지가 삶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어떤 집단에서는 여유롭게 보내는 시간이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더 가치 있게 이야기되기도 한다. 그 속에서는 '좋은 삶'을 평가하는 기준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느냐는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내 ‘계기판’의 기준을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성격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어떤 모임에서는 외향성과 사교성이 매력으로 이야기되고, 또 어떤 관계에서는 차분함과 깊이가 더 가치 있게 여겨진다. 우리가 ‘멋지다’고 느끼는 사람의 모습도 이런 환경 속에서 조금씩 만들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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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자존감은 맥락 없이 솟아나는 감정이 아니다. 우리가 어떤 기준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 속에서 형성되는 감각이다.
어느 날의 M처럼 SNS에서 누군가의 화려한 휴가나 성취를 보며 마음이 흔들릴 때, 잠시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저 사람에게는 어떤 기준이 중요할까. 그리고 그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일까.
그 질문이 반복될수록, 우리는 타인의 삶에 덜 흔들리고, 조금씩 내가 원하는 삶과 가까워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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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Istock
* 글쓴이 - 이지안
여전히 마음공부가 어려운 심리학자입니다. <감정 글쓰기>, <성격 좋다는 말에 가려진 것들>을 출간하였고, <나를 돌보는 다정한 시간>,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를 공저하였습니다. 심리학 관련 연구소에서 일하며 상담을 합니다.
캄캄한 마음속을 헤맬 때 심리학이 이정표가 되어주곤 했습니다. 같은 고민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닿길 바라며, 심리학을 통과하며 성장한 이야기, 심리학자의 눈으로 본 일상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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