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splash의Infralist.com
글쓰기라는 행위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글을 써서 ‘독자를 만나는 행위’일 것이다. 나는 글쓰기모임에서 이 독자를 만나는 일을 무엇보다 강조한다. 우리는 이제 그냥 일기를 쓰는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글쓰기가 있지만, 내가 글쓰기 모임에서 하고자 하는 글쓰기는 ‘독자를 상정’한 글쓰기이다. 혼자 읊조리는 독백이나 자기만 보고 나서 불태울 일기를 쓰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에게 읽히고 다가가는 글을 쓰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글쓰기 모임은 어떻게 보면, 이 점을 끊임없이 상기하고, 이 독자를 만나는 ‘태도’를 기르는 것이 핵심이다. 독자는 내 감정의 쓰레기통이 아니다. 내가 내뱉은 말을 다 받아줘야 하는 사람들도 아니다. 독자는 내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 다 들어줘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작가는 최선의 예의를 갖춰야 한다. 마치 소개팅 상대를 대하듯이, 독자에게 친절하게 나의 이야기를 전해줘야 한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독자에게 감사하고, 그들에게 의미나 감동, 재미가 있는 이야기를 정성들여 잘 만들어 전할 의무가 있다.
물론, 이것은 세상 모든 예술이나 글쓰기의 태도는 아닐 것이다. 예술가에 따라서는 자기 내면에 있는 모든 ‘날 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걸 최선이라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거기에서 무엇을 느낄지 말지는 어디까지나 수용자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운영하는 글쓰기 모임에서 지향하는 태도는 그와 다르다. 나는 오히려 잘 만든 ‘영화’나 ‘드라마’를 떠올려볼 것을 권유한다.
우리는 2시간짜리 영화를 앉아서 순식가에 보지만, 그 영화를 만드는 데는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들어간다. 우리에게는 1초만에 지나갈 장면 하나하나에도 감독의 의도와 정성이 담긴다. 영화 전체에서 딱 3초밖에 등장하지 않는 장면 안에도, 섬세하게 고려한 구도, 배경에 설치한 사물, 그 순간의 효과음 하나하나까지 시청자를 모입하게 하거나, 깊은 감성을 느끼게 할 장치들이 가득하다. 나는 글쓰는 사람도 그처럼 ‘독자’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글쓰기 모임이 좋은 것은 그런 나의 ‘첫 독자’들을 온전히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서로에 대한 호의를 가진 10명 남짓의 사람들이 서로의 글을 정성들여 읽고, 솔직한 진심을 전한다. 좋았던 부분, 잘 이해가 안되었던 부분, 잘 읽혔던 부분, 읽는 데 불편했던 부분 등을 솔직하게 전한다. 서로를 괴롭히거나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의 글이 진심으로 더 독자가 잘 가닿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한다. 이것이 내가 하는 모든 글쓰기 모임에서 필수적이라 생각하는 ‘합평’이다.
한 번은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는 분이 이러한 시간이 있는 글쓰기 모임을 ‘안전지대’라고 표현해준 적이 있었다(여담이지만, 그 분은 이후 글쓰기 모임에 관한 논문으로 심리학 박사학위까지 취득했다). 망망대해 같은 세상에서 불특정 다수의 독자를 만나는 건 두려울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서로에 대한 호의를 확인하며 매번 모이는 10명 남짓의 사람들에게 진심을 털어놓으며 글쓰기를 시작하는 건 해볼만한 일일 수 있다. 그렇게 ‘독자를 만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글쓰기 모임을 하다 보면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라는 말을 매우 자주 듣게 된다. 글쓰기란 어찌 보면 ‘해선 안되는 줄 알았던 이야기’가 사실은 해도 되는 이야기였다는 걸 알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내면의 상처, 내 안의 고민, 차마 주변 사람들에게는 하기 어려웠던 이야기들을 꺼내며 독자에게 건네보는 연습을 한다. 그것을 독자에게 함부로, 거칠게, 폭력적으로 건네는 방법이 아니라, 오히려 글쓴이가 자기 자신을 치유하면서 독자까지 위로하는 방식으로 전하는 ‘태도’를 배운다. 너와 나의 공감지대를 찾고, 그로써 작가와 독자에게 모두 필요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글쓰기 모임은 세상으로 나가 독자를 만나기 전에 거치는 작은 세계가 된다. 이 작은 세계에서 용기를 얻어 점점 자신의 세계를 확장시켜 나가는 사람들은 자기만의 글을 쓰는 작가가 된다. 그는 이제 세상 어디에서 어떤 독자를 만나더라도, 충분히 자신의 이야기를 너무 성급하거나 거칠게 상대방에게 던지는 게 아니라, 찬찬히 설득하며 위로와 공감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그것이 내가 믿는 종류의 글쓰기 모임이 하는 일이다.
* 글쓴이 - 정지우
작가 겸 문화평론가, 변호사. 20대 때 <청춘인문학>을 쓴 것을 시작으로,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이제는 알아야 할 저작권법>, <그럼에도 육아> 등 여러 권의 책을 써왔다. 최근에는 저작권, 형사사건 분야 등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20여년 간 매일 글을 쓰고 있다.
페이스북 - https://facebook.com/writerjiwoo
인스타그램- https://instagram.com/jungjiwoowriter
* https://allculture.stibee.com 에서 지금까지 발행된 모든 뉴스레터를 보실 수 있습니다. 콘텐츠를 즐겁게 보시고, 주변에 널리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세상의 모든 문화'는 각종 협업, 프로모션, 출간 제의 등 어떠한 형태로의 제안에 열려 있습니다. 관련된 문의는 jiwoowriters@gmail.com (공식메일) 또는 작가별 개인 연락망으로 주시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