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7일에 쉴 거야? 설이라며?” 퇴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내 자리를 지나가던 팀장이 문득 떠올랐다는 듯 물었다.
아, 맞다. 설날. Lunar New Year.
“아무 데도 안 가. 휴가 계획 없는데?” 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이후 중국인 아내를 둔 매니저를 비롯해 설에 맞춰 휴가를 내는 동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늘만 사는 기분으로 살다 보니 2주 뒤 일정에 대해 미리 생각해볼 여유가 없다. 아이의 휴교일만 빼곡히 입력된 내 캘린더에는 설 연휴 계획이 따로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1월 중순이 넘어서야 겨울 휴가와 본국 원격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직원들로 업무가 정상화되기 시작했다. 새해 업무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건 지도 몇 주 되지 않았다. 게다가 지난주는 눈폭풍으로 연이은 휴교가 이어지며 신년 워크숍과 미팅들이 취소와 재개를 반복했다. 설을 떠올릴 겨를이 없었다.
설이 언제더라? 한국 포털을 열어 2026년 설날을 검색한다. 이번 설은 화요일. 그냥 평범한 주중의 근무일일 거라 생각했는데 달력을 다시 보니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2월 16일은 미국의 Presidents’ Day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생일을 기념하는 Washington’s Birthday이라 불리기도 하는 연방 공휴일이다. 2월 17일은 우리 교육구의 Teacher Workday(성적처리, 교사 연수 등으로 수업을 하지 않는 휴교일)라 학생들은 학교에 가지 않는다.
한인 커뮤니티가 활발한 지역에서는 한국문화원이나 커뮤니티 센터를 중심으로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처음 도착했던 미국의 대학 도시는 달랐다. ‘한국인임을 잊지 않기 위해’, 설의 의미를 알리기 위해서는 여러 자발적인 활동이 필요했다. 마침 아이의 어린이집에 ‘설날 알리미’ 일일 교사로 초빙되었다. 떡국 만들기 체험을 하고, 한복을 가져가 반 친구들과 함께 입어보고, 세배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오른손이 위인지 아래인지 헷갈려 하는 다섯 살 아이들과 함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긴 문장을 어렵게 따라 하던 기억이 있다.
미국 생활 10년 차. 한국의 명절은 이제 꼭 지켜야 할 연휴라기보다는, 한국에 있는 사람들과 북클럽이나 명상 모임 일정을 잡을 때 참고하는 ‘가상의 휴일’에 가깝다. 내가 사용하는 온라인 캘린더에도, 책상 위 탁상 달력에도 한국의 공휴일은 빨간 날로 표시돼 있지 않다. 다만 우리 교육구에는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있다 보니, 각 문화권의 휴일이 ‘종교·문화적 기념일’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돼 있다.
우리 교육구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종교·문화적 기념일은 총 22개. 올해 2월 17일은 Lunar New Year이고, 다음 날인 18일은 라마단 첫날이다. 어떤 휴일을 어떤 이름으로 부를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할 것인가는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다. 설을 Chinese New Year라 부를 것인지 Lunar New Year라 부를 것인지에 따라 그 사회가 누구를 얼마나 포괄하는지가 드러난다. 22개의 기념일이 기록돼 있지만, 그 목록에 포함되지 못한 누군가는 여전히 소외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교육구 홈페이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종일 또는 저녁 시간에 해당하는 기념일은 매년 요일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학교 휴무일과 겹치는 경우 별도로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고.
글로벌 사회인으로 살며 조금씩 옅어지는 나의 한국인 정체성에 소소한 업데이트를 하듯, 한국 식품점에서 명절 음식 재료를 사 한 번쯤 해 먹고, 가족들과 화상 통화를 하는 것. 그 정도가 내가 유지해온 명절의 형식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설에 쉬느냐”는 팀장의 질문 덕분에 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팀장은 큰 의미 없이 물었을 가능성이 크다. 휴가 결재권자로서 업무 공백을 확인하는 말이었을 수도 있고, 쉬고 싶으면 쉬어도 된다는 배려였을 수도 있다. 의도를 굳이 되묻지는 않았지만, 그 질문 하나로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더불어 부서장이 아내의 명절을 챙기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은, 부서 이동 1년 차인 나에게 작은 보너스 같은 정보였다.
다국적 직원이 모인 조직에서는 서로의 명절과 종교적 시간을 존중해야 한다는 감각이 기본값처럼 깔려 있다. 더 나아가 특별히 요구하지 않아도, 어떤 시기에는 누군가의 생활 리듬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상식처럼 여긴다. ‘존중한다’는 말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되는 상태’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전자는 자칫 ‘양해해준다’는 시혜로 읽힐 수 있지만, 후자는 이미 생활의 일부가 된 감각에 가깝다.
인도의 디왈리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의 설도 출신 국가 직원 협회를 중심으로 기관 내에서 기념 행사가 열린다. 올해도 아시아 국가 직원 협회가 공동으로 설날 행사를 열었다. 한쪽에서는 중국인 직원들이 옷을 맞춰 입고 춤을 추고, 한국 부스에서는 난타와 사물놀이가 이어졌다. 지나가던 직원들과 만두를 나눠 먹으며 교자와 만두, 샤오롱바오와 슈마이의 차이를 이야기한다. 카페테리아의 Asian Week 메뉴가 우리의 기억 속 아시아 음식과는 조금 다르다는 데서 잠깐 웃으며 불만을 털어놓기도 한다.
‘김치볶음밥’이라고 적혀 있지만 고춧가루 하나 없이 배추와 양파만 들어간 볶음밥을 보며 “이건 김치볶음밥이 아니잖아”라며 작은 분노를 표하다가, 이 수많은 문화와 입맛 사이에서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메뉴를 만들어야 하는 조리 담당자의 고충을 떠올리며 오히려 감사로 마음을 바꾸는 시간들.
본국 방문 휴가 비용을 지원하거나, 본국에서의 원격 근무를 허용하는 기관도 적지 않다. 특별히 양해를 구하는 긴 휴가가 아니라, 누구나 원하면 가족과 친지가 있는 본국을 방문할 수 있도록 마련된 제도적 안전망에 가깝다.
라마단 기간에 재택근무를 선택하는 직원도 있다. 하루 종일 금식하는 동안 사무실에 퍼지는 커피 향과 점심 도시락 냄새가 힘들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 부서에서는 “왜?”라고 묻지 않는다. 아니, 그렇게 묻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다.
이사회나 국제 워크숍 일정을 잡을 때도 가능하면 라마단 기간은 피한다. 피할 수 없다면 포장 음식을 따로 마련한다. 분명 품이 드는 일이다. 그래도 그 수고를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새해 인사가 카톡창을 채운다. 그리고 나는 이번 주말 파나마로 올해 첫 워크숍을 위해 떠난다. 이번 워크숍 준비는 유난히 힘들었다. 행사 전주에 카니발이 있기 때문이다. 사순절(Lent)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 직전까지 이어지는 파나마의 카니발은, 도시 전체가 며칠간 축제 모드로 전환되는 중남미 최대 행사다.
공공기관은 이미 지난주부터 연락이 되지 않았고, 호텔이나 업체들과의 이메일도 갑자기 멈춰버렸다. 지난주 내내 “연휴 전에 이것만은 처리하자”며 조심스러운 표현을 덧붙여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쉬어야 할 시간에 일하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묘하게 미안하고 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설 당일, 나는 출근하기로 했고 혼자 있을 아이가 걱정되어 남편은 재택근무를 신청했다. 그래도 설인데 그냥 지나치긴 아쉬워서 “우리 만두나 빚을까?” 했더니 두 남자가 동시에 “파는 게 훨씬 맛있어”라며 고개를 젓는다. 어쩌면 다행이다. 대신 떡국떡을 불려두었다. 퇴근 후 떡국을 끓이는 과정을 아들과 함께 해볼 생각이다. 지단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얇게 부치는 법을 가르쳐주며 명절 기분을 조금 내는 정도로. 한국의 가족들에게 보낼 사진 한 장쯤 찍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누군가에게는 카니발이, 누군가에게는 라마단이, 그리고 나에게는 설인 이번 주.
“설이라며?” 하고 한 번쯤 물어주는 사람이 있는 곳이라서, 쓸쓸함 대신 담담한 마음으로 설 출근을 준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