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부모의 자세
아일랜드 일상다반사, 도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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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늘 “한국에서도 크리스마스를 성대하게 지내나요?”라고 묻는다. 나는 그 질문에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또 휴일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설날(Lunar New Year's Day)이나 미국의 추수감사절(Thanks giving Day)과 같은 추석을 더 의미 있게 지내는 것 같아요.”라고 답한다. 그러면 이어지는 질문으로 “그럼 휴일은 얼마나 되나요? 크리스마스 휴가나 설날 (음력설이라고 이야기를 해도 사람들은 기어이 ‘Chinese New Years Day'라고 말을 이어간다.) 말이에요.”라고 묻는다. 그럼 나는 그 질문에 “아, 설날은 3일 정도 쉬고, 크리스마스는 딱 하루 쉬어요.”라고 답하게 되는데, 그 뒤엔 언제나 “그렇게 중요한 날인데 3일만 쉰다고요?!” 라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하곤 한다.
아일랜드 학교는 겨울방학이 없는 대신에 크리스마스 시즌에 2주간 방학을 한다. 그러니까 최소한 2주 정도는 쉬면서 크리스마스를 즐겨야 한다는 뜻인 것 같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내리는 겨울비를 맞으며 학교를 또 일터로 가야 하는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창밖의 빗소리를 들으며 벽난로 앞에서 홍차를 마시면서 가족들과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휴식의 시간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부모의 자세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모는 어린 자식이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즐겁게 일상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특히 부모들은 아이의 크리스마스를 성대하게 만들어 주고 싶어 하는데 이런 심리를 간파한 상점들은 핼러윈데이가 끝나는 11월부터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상품을 판매하고, 동네마다 있는 신용조합에서는 크리스마스 쇼핑을 위한 단기 대출 광고가 시작된다. 놀라운 사실은 아일랜드의 아이들은 실제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까지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믿고 있는 것 같다. 뭐랄까 가족뿐만 아니라 아일랜드 전체가 아이들에게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믿게 하기 위해서 말하자면 ‘트루먼 쇼’ 같은 것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아이를 낳기 전, 또 아이가 자그만 했을 때도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부모로서의 남편과 나의 태도는 매우 소극적이었다. 아이가 좋아할 인형 하나, 새 옷 한 벌 정도를 심사숙고해서 사고 또 카드도 직접 만들거나 자선단체에서 판매하는 단순한 디자인의 카드를 쓰는 정도였다. 남편과 나는 물질주의가 지배하는 크리스마스 문화를 그다지 환영하지 않았다. 또 무슨 선물을 아이들이 좋아하는지에 대해서도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 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을 만나 아이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네 명의 아이를 둔 이 사람은 아이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기 위해 매년 적금을 들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자신의 친구는 아이들에게 매년 약 20가지의 선물을 준비하는데 이런 모습은 아일랜드 가정에 흔한 편이라고 이야기해서 나를 놀라게 했다. 부모로서 선물을 고를 때 아이가 가장 가지고 싶어 하거나, 또 아이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한 두 개 정도 준비하는 것이 선물을 준비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을 해왔던 나의 생각과는 많이 다른 양상을 보였는데, 나중에 초등교사인 시누이에게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요즘은 다들 그런 분위기라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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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에게 편지를 쓴다.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실제로 믿고 있는 (어쩌면 믿고 싶어 하는) 어린이들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편지를 쓴다. 그 편지에서 아이들은 정말 진지하게 올해 자신이 얼마나 좋은 일을 했는지를 빼곡하게 적고 난 뒤, 자신이 받고 싶은 선물의 목록을 적는다. 그런 뒤 자신이 적은 내용에 대한 부모의 동의를 받는다는 형식으로 편지를 부치기 전에 부모에게 그 편지를 반드시 먼저 보여주는데, 이때 부모들은 아이가 원하는 선물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말 그래도 아이들은 가지고 싶은 선물의 ‘목록’을 작성하게 되는데 그래서 대개는 몇 개의 종류가 나열된다. 부모들은 이 리스트에 따라 선물들을 준비하고, 거기에 추가로 ‘산타’가 아닌 ‘부모’로서 아이에게 주는 선물을 또 준비한다.
크리스마스 선물 쇼핑은 미리미리
아이들이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은 소위 ‘유행’을 타서 대개는 비슷한 것들이 많아서 일부 부모들은 핼러윈이 끝난 뒤부터 부지런히 쇼핑을 한다. 요즘 한국에서도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40일 전부터 40개의 작은 선물 상자를 여는 'Advent Calendar‘가 유행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아이들에게 이 달력(calendar)을 가지는 것은 정말 중요한데, 나 역시 프리미어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매년마다 11월에 상점에 미리 예약을 해 두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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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트리 장식
나는 크리스마스트리는 언제부터 세우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혹시 교회의 전통이 있을지 궁금해서 어느 날 신부님께 물어보았고, 전통적으로 예수의 탄생을 40일 전부터 간절히 기다린다는 의미의 대림절(Advent)이 시작되는 일요일에 트리를 세워놓는다는 답을 들었다.
집안에 크리스마스 트리나 장식을 하는 것은 아일랜드에서는 언제나 가족이 함께 하는 의식 같은 것이다. 다락에 두었던 커다란 상자를 꺼내어 먼지를 닦고, 진짜 전나무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나무를 꺼내어 가족들은 함께 나무를 장식한다. 우리 가족은 매번 트리를 설치한 뒤 아이를 그 옆에 세워서 사진을 찍는데, 그 사진으로 아이가 1년간 얼마나 자랐는지 알 수 있어서 찍을 때마다 흐뭇한 마음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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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크리스마스 콘서트
아일랜드는 전통적으로 가톨릭 수도원에서 학교를 운영했고, 오늘날에도 전체 초등학교의 약 90%가 가톨릭 이념으로 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Irish time, 2024) 그래서 학교에서 담임선생님과 함께 ‘첫 영성체’ 등의 가톨릭 예식을 준비하고 또 학교 정규 수업에서 가톨릭 교리를 배우고 있다. 그리고 학교의 가장 큰 행사 중 하나로 크리스마스 콘서트가 열리는데, 이 날은 부모들이 휴가를 내고 참석하고 또 앞쪽 자리에 앉기 위해 눈치 싸움이 일어나기도 한다. 아일랜드 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참여하는 행사들이 워낙 많아서 일 년 내내 부모들이 이를 준비하기 위해 바쁜데 특히 의상을 준비하거나 멋진 크리스마스 점퍼를 미리 준비하느라 크리스마스 콘서트 시즌에는 부모들은 더욱 분주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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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할아버지 방문(Santa's Grotto)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아이가 있는 집들이 꼭 하는 일 중에 하나가 바로 ‘산타의 집’에 방문하는 것이다. 여유가 되는 사람들은 핀란드의 랩랜드(Lap Land: 산타마을이라 불리는 곳)를 방문하기도 하는데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아이들이 방문하는 놀이 시설에 상업적으로 설치되는 산타마을을 방문해서 산타를 만나게 된다. 무료로 운영되는 곳도 있지만 대개는 2-3만 원을 내고 엘프(elfs)들의 공연을 보고 난 뒤 산타할아버지를 만나 무릎에 앉아서 산타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 뒤 산타와 함께 온 가족이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인화해서 집으로 가져오는데, 남편의 형제 중 한 가정은 매년 산타와 찍은 사진을 거실에 걸어두는데 그 사진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는데 마치 가족의 역사를 한눈에 담은 것과 같은 생각을 들게 한다.
Toy Show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 하면 생각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Toy Show'라고 말할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크리스마스 2-3주 전 금요일 밤에 아일랜드 공영방송인 RTE에서 약 2시간 동안 방영되는데, 이 프로그램은 전국 각지의 아이들이 방송에 직접 출연해 자신이 좋아하는 책이나 장난감을 소개하고 진행자와 함께 인터뷰를 하는 형식이다. 또 춤과 노래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의 공연도 볼 수 있고, 유명인이 깜짝 출연해서 아이들에게 깜짝 선물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일랜드의 어린이들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를 바란다.
또 ‘Toy Show'에서는 프로그램 중간에 각국의 이민자들이 아일랜드의 가족들에게 크리스마스 메시지를 보내는 영상을 보여주는데, 아일랜드 내의 인구가 5백만이고 이민자의 수가 3백만 인 아일랜드의 독특한 역사적·사회적 상황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Toy Show'가 방영되는 동안 난치병 어린이를 위한 모금이 진행되는데 2025년 올해는 단 하루 동안 약 4백만 유로(한화 약 67억)가 모금되어 관련된 자선단체에 전달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 가족도 시누이 가족들과 함께 ‘Toy Show'를 시청했는데, 프로그램이 끝날 무렵 아이들의 성화로 기부금을 내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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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이브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아이들이 좀처럼 잠들지 못한다. 왜냐하면 기어코 산타할아버지를 만나고 말겠다는 생각으로 졸린 눈을 비비며 쉽게 잠들지 못하는데, 사실은 기다리는 선물을 빨리 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 아이도 크리스마스이브에는 늦은 시간까지 깨어 있는데, 루돌프와 친구들에게 줄 당근을 썰어 문 밖에 두고 산타 할아버지를 위해 우유 한잔과 쿠키를 식탁에 준비해 둔 뒤에야 잠자리에 들곤 한다. 그리고 아이가 어느 정도 잠에 빠져 들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면 우리 부부는 자동차 트렁크에 숨겨 두었던 아이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가지고 들어와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에 조용히 놓아둔다.
크리스마스 날 아침
아이는 크리스마스 아침에는 마치 ‘나 홀로 집에’ 영화의 주인공처럼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난다. 언젠가부터 아이가 일어나는 순간을 보는 것이 정말 사랑스러워서 크리스마스 아침에는 아이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며 그 고운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곤 한다. 지난 몇 주간 아이를 위해 선물을 사고, 아이와 함께 산타도 만나고, 한껏 상기된 얼굴로 진지하게 임하던 학교 성탄 콘서트에서의 멋진 모습이 눈앞에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부모로서 힘든 면도 있었지만 나 역시 아이 덕분에 행복한 시간을 보냈노라고 혼자서 되뇌곤 한다. 그리고 잠시 뒤 아이가 잠에서 깨어나면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나서 쏜살같이 크리스마스트리로 달려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선물을 열며 행복해할 아이의 모습을 기대하며 괜히 작게 헛기침 소리를 내어 본다. ‘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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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럭..부스럭.........(번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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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일상다반사
국제결혼을 한 뒤 아이를 키우며 아일랜드의 작은 도시에 살면서 겪고 있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나눕니다.
*도윤
사람을 돕기 위해 공부하고 또 일하며 살다가, 이제는 아일랜드에서 아내이자 엄마로 살고 있습니다. 나를 알고 너를 이해하기 위하여, 그리고 내가 쓰는 글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기를 희망하며 읽고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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