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고생하기로 택한 당신에게 A는 ‘워커홀릭’이라 불릴 만큼 회사에서 늘 바쁘다. 자기 업무도 아닌데 부서 시스템의 허점을 찾아내 기존 방식을 바꾸자고 설득하고 회의를 연다. 그러느라 야근을 하기도 하고, 동료의 핀잔을 사기도 한다. 그런 그에게 누군가가 한마디 했다. “괜히 사서 고생이야.”
‘사서 하는 고생’은 안 해도 될 일을 일부러 해서 힘들어지는 상황을 말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굳이 자처해서 힘든 일을 떠안거나 고생한다는 의미다.
나도 가끔 듣는 말이다. 글을 쓴다고 밤을 지새울 때 누군가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왜 사서 고생하냐’고 타일렀다. 사실 글을 쓴다고 인생이 크게 달라지거나 돈을 벌거나 대단한 경력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굳이 글을 같이 쓸 사람을 찾고 스스로 마감을 정하고 잠을 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지금도 글을 쓴다.
빈민가 지역의 교사를 위한 상담 강의를 맡았을 때도 그랬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지만, 한 주에 한 번씩 찾아가 교사들을 대상으로 그룹 세션을 진행했다. 영어로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그룹 세션이 있는 수요일이 다가올 때마다 긴장감이 커졌다. 그 강의를 맡지 않았다면 훨씬 평온한 수요일을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강의 준비를 하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되었을 테고, 영어로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 또한 결국 ‘사서 하는 고생’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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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서 하는 고생’은 분명 비효율적인 구석이 있다. 우선 뚜렷이 보이는 이득이 없다. 경제적인 수익 같은 물질적 보상도, 명예나 인기와 같은 사회적인 보상도 크게 없다. 게다가 힘이 든다. 어떨 때는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갈 정도로 애를 쓰는 바람에 신경이 곤두서거나 체하기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늘어져 쉴 수 있는 달콤한 시간도 날려버린다. 피로와 긴장, 압박감과 싸워야 하고, 생각처럼 잘되지 않으면 실패감이라는 고통도 맛보아야 한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삶에서 진짜 중요한 일들은 대부분 ‘사서 하는 고생’이다. 대표적인 예가 육아다. 아이가 없었다면 출근 전 아침 시간은 훨씬 여유로웠을 것이다. 부엌 바닥이 닳도록 종종거리며 아이를 챙기는 대신, 커피를 내려 마시며 느긋하게 뉴스를 챙겨보고 있을 수도 있다. 주말에도 넷플릭스를 보며 쉬거나 자기계발의 여유를 누릴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부모가 된 순간, 그 여유를 아이에게 기꺼이 내어준다. 아이에게 더 좋은 것을 주려고 고민하며 시간을 쏟느라 그만큼 마음의 여백도 줄어든다. 이야말로 거대한 ‘사서 하는 고생’이다.
그 고생은 내가 삶을 살아가는 이유와 닿아 있다. 아이를 책임감 있게 양육하고자 하는 의지나 아이에 대한 사랑과 연결감 없이 내 삶을 설명할 수 없다. 내가 결코 소홀히 하고 싶지 않은 중요한 가치이다. 결국 돌봄이라는 가치가 내게 소중할수록, 양육의 수고로움은 오히려 내가 바라는 삶을 잘 살고 있음을 증명한다. 내가 중요하다고 믿는 것을 실천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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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values)는 내가 삶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즉,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에 대한 답이다.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고 싶다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연결되어 지내고 싶다거나, 배우고 성장하는 삶을 살고 싶다와 같이 내가 추구하고 바라는 삶의 방향을 보여준다.
자신이 중시하는 가치대로 살지 못할 때 마음은 무거워지고 무력감이 찾아온다. 하지만 그 가치를 실천하는 삶 역시 마냥 즐겁고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가치를 따르는 삶은 어떻게든 수고로움과 고통을 동반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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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굳이 스트레스를 감수해 가며 먼 길을 달려 교사들을 만난 이유도 가치에 있었다. 지역사회에 기여하고픈 바람, 내 한계를 넘어보는 도전에 대한 가치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진정성, 성찰, 소통과 같은 가치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고되고 막막한 글쓰기를 놓지 못한다. 워커홀릭인 A도 효율적인 근무 환경, 조직에 기여하고 책임감 있게 일하고 싶다는 가치가 있었다. 그 가치를 삶에 실현시키는 과정에서 우리는 기꺼이 고생을 택한다. 하지 않아도 될 그런 수고 말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스스로 고생을 사서 하는 영역이 있다. 그다지 효율적이지도, 이득이 커 보이지도 않고 심지어 손해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당장의 보상이 없더라도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에 조금 더 가까워지는 순간이다. 새벽마다 운동을 나가는 일, 다회용 컵을 챙기는 일, 가족을 위해 식탁을 차리는 일까지. 결국 그런 시간이 쌓여 나다운 삶을 만들어 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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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Istock
* 글쓴이 - 이지안
여전히 마음공부가 어려운 심리학자입니다. <감정 글쓰기>, <성격 좋다는 말에 가려진 것들>을 출간하였고, <나를 돌보는 다정한 시간>,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를 공저하였습니다. 심리학 관련 연구소에서 일하며 상담을 합니다.
캄캄한 마음속을 헤맬 때 심리학이 이정표가 되어주곤 했습니다. 같은 고민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닿길 바라며, 심리학을 통과하며 성장한 이야기, 심리학자의 눈으로 본 일상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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