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이 얼마나 남았더라…’
둘째 임신은 지나온 임신 기간도, 며칠 안 남은 출산 디데이도 모두 뒷전이 된다더니 그 말이 딱이다. 첫째 임신은 스무스하게 지나가 열달이 참 행복하고도 짧다고 느꼈는데, 둘째는 바쁘게 지내다 보니 어느새 출산이 50일도 남지 않았다. 임신 기간을 즐기기는커녕 자꾸만 임신 사실을 까먹는다. 골반이 아프거나 자다가 다리에 쥐가 나면 그제야 뱃속에 파인애플만한 아기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해외 태교 여행은 꼭 가고 싶었던 첫째 때하고는 다르게, 첫째를 데리고 바리바리 짐 챙겨 멀리 나가느니 가까운 거리에 조식까지 푸짐하게 나오는 국내 호캉스를 선호하게 되고, 그보다 더 선호하는 것도 생겼다. 엄마 혼자만의 자유시간을 온종일 누릴 수만 있다면 호캉스 따위 안 가도 태교 여행으로는 대성공일 것 같다. 물론 둘째 태교의 8할은 첫째의 사랑스러운 미소와 종알거리는 말소리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동시에 체력적으로 기진맥진한 것도 사실이다. 하루 정도는 아기 맘마, 등하원, 산책, 로션 바르기 등의 잔업으로부터 해방되어도 좋지 않을까 싶다.
둘째가 태어나면 첫째가 둘째에 밀려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는데 임신 기간을 보내보니 둘째가 잊힐 가능성이 크겠다는 방향으로 생각이 기울고 있다. 지난 둘째 임신 기간을 돌아보면, 기억 나는 건 입덧이 심했다는 것, 입덧이 끝나고 육아에 집중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다음 달이면 아기가 태어난다는 사실뿐이다. 많은 시간이 생략된 듯 빠르게 흘렀다. 다행히 첫째 때 익혀둔 나름의 임신 관리 스킬이 몸에 배어 있는지 무난한 임신 기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둘째 새싹이에게 소리 내 태명을 불러준 게 열 번은 될는지 세어보면 미안해 진땀이 날 정도이다. ‘둘째는 사랑’이라는 말이, 어쩌면 둘째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태어난 뒤에 더 듬뿍 사랑을 주게 된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육아를 하면서 짬짬이 일을 하고, 임신으로 무거워진 몸을 셀프 케어하고, 하루하루가 붕어빵 타이쿤을 하는 것처럼 반복적이고 단순한데 참 정신없다. 이렇게 눈앞에 놓인 것들만 처리하며 지내다 나중에 정신 차리고 보면 흰머리 잔뜩에, 주름도 자글자글, 금방 인생의 다른 챕터로 넘어가 있을 것 같다. 장점이라면 현재라는 순간에 이렇게나 충실하게 살았던 적이 살면서 있었나 싶을 정도로 몰입도가 높다는 것일 테고, 단점이라면 세상의 다양한 이야기가 블러 처리된 듯 멀어진 지 오래에, 나의 미래에는 아이들의 성장만이 있을 거라는 닫힌 가능성 정도이다. 내게 열린 결말로서의 미래가 여전히 남아있을까, 닫힌 결말만 남은 거라면, 그 ‘닫힌 결말’은 과연 답답하기만 한 일일까 뭐 이런 복잡한 생각이 뒤엉킨다.
이번 둘째 임신에서는 출산 전까지 일을 해도 되는지, 운동은 어느 정도 강도가 적당한지, 어떤 음식을 조심해야 하는지 재보거나 따져보지 않았다. 그저 몸이 보내는 신호를 들으면서 하던 대로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보내고 있다. 일상보다 힘들면 힘든 대로, 모처럼 평온한 일상이 가능하다면 그런 대로 감사하며 지낸다. 어차피 임신, 출산, 육아 모두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지난 2년 동안 뼈저리게 배운 덕분이다. 완벽한 계획을 추구하던 인간이었던 나로서는 많이 유연해진 내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다. 아이는 부모를 성장하게 한다는 게 이런 상황을 두고 이야기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곧 둘째가 태어나면 나와 남편은 또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게 될지 궁금하다. 성장의 과정에서는 당연하게도 성장통이 수반될 거라고 생각하기에 겁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첫째를 낳고 혼비백산이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리는 일 년을 보냈다. 첫째 아이가 돌이 조금 지나고, 둘째 임신도 안정기에 들어서면서 남편과 나는 이제야 다시 서로를 바라보고 웃어낼 여유가 생기고 있다. 둘째가 태어나면 또 한동안은 체력적으로 힘든 시기가 이어지겠지만, 엄마와 아빠라는 나무가 단단하게 자리를 잡고 있어야, 그 안에서 이제 막 움트기 시작한 아이들이 건강하고 파릇하게 자라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중요하지 않은 것들로 중요한 순간을 감히 놓쳐버리지 말자고, 조금 더 현명하게 내 인생에 다시 없을 마지막 신생아의 아름다움을 힘껏 만끽해 보자고 다짐한다. 이전보다 더 단단해질 마음을 먹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잘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기세로 쭉 잘해낼 거라고 미래의 나와 남편에게 틈틈이 마음 속으로 응원을 보낸다. 그리고 뱃속에서 꼬물거리며 알아서 잘 크고 있는 둘째 새싹이에게도, 곧 동생이 태어난다고 엄마 배에 붙어 “아포~? 아포~?”를 묻는 첫째 뉴뉴에게도 내 온몸이 꽉 차 넘쳐버릴 정도의 사랑과 응원을 보낸다. 나와 남편으로부터 나온 사랑과 웃음이 아이들에게 전달되어 언제까지고 세상에 남아 반짝일 수 있다면 더 이상 뭐 바랄 게 있나 싶기도 하다. 그러려면 역시 우리부터 단단해져야 할 일이고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