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씩씩하고 친절했던 조부장 아저씨는 순간 굳은 표정을 지었다. 복화술을 하듯 “천 원이요.”라고 말하는데, 팔기 싫은 기색이었다. 남자가 그냥 지나가주길 바라는 것 같았다.
남자는 오른쪽 주머니에서 백 원짜리 동전을 한 움큼 꺼내 왼손바닥에 올려놓았다. 동전들을 일렬로 세워가며 하나하나 세기 시작했다.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이럴까 싶어, 내가 대신 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가 나를 주목하고 쳐다볼까 봐 두려웠고, 혹여나 내 얼굴을 기억하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천 원으로 무슨 거창한 호의라도 베푸는 것처럼 보일까 봐 민망하기도 했다. 몰래 조부장에게 천 원을 건넬 수도 없었다. 어쨌든 마음이 무척 불편했다.
내가 망설이는 사이, 그는 결국 백 원짜리 동전 열 개를 내밀었고, 조부장은 마지못해 떡볶이를 건넸다. 그가 떡볶이를 허겁지겁 먹었는지, 천천히 음미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가 얼마나 떡볶이를 간절히 원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의 눈에 띄지 않고 대신 내줄 수 있을지를 고민했던 그 순간만큼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그는 “떡볶이 얼마예요?“가 아니라 “이거... 얼마 주면 먹을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아직도 그 말을 떠올린다.
그런 기억이 또 있다. 좁은 통로에서 산발 머리를 하고 벽을 보고 서 있던 남자, 동네에서 '미친년'이라 불리던 여자 노숙자. 남자 옆을 지나가야 했을 때는 식은땀을 흘렸고, 눈이 마주치기만 해도 소리를 지르던 그 여자는 피해 다녔다.
‘조부장 떡볶이’의 남자와 통로의 남자, '미친년'이라 불리던 여자와 <기생충> 속 지하실 남자. 그들은 모두, 내가 보지 않으려 했던 사람들이었다. 사회의 경계 밖에 있는 것 같은 존재들. 나는 그들을 사람처럼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과 마주한 나 자신에게서도 눈을 돌리고 싶었다.
친구는 <기생충>이 가난한 사람을 나쁘게 그려서 불쾌하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가정부와 그의 남편을 괴물처럼 느꼈다는 사실이 불편했고, 혼란스러웠다.
노숙자나, 몇 년은 씻지 않은 듯 행색이 지저분한 사람, 소통이 불가능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사람을 보면, 지금도 나는 피하고 싶어진다. 그건 분명 어떤 종류의 혐오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것이 혐오인지, 공포인지, 나 자신의 나약함 때문인지, 혹은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무력감 때문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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