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이후 나는 꽤 여러 일들을 하며 살고 있다. 변호사 일도 하고, 책을 쓰고, 강의나 방송을 다니며 매일이 다른 날들을 보낸다. 사람들도 다양하게 만나는데, 만나면 다들 내가 ‘무엇’을 하며 사는지 궁금해하곤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보면, 내가 가장 좋아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 일들이 무엇인지를 자연스럽게 말하게 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글을 쓰는 일이다, 그리고 내가 가장 보람을 느끼는 일은 ‘글쓰기 모임’이라고 말하게 된다.
글쓰기 모임에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낄 때는, 아무래도 모임원들이 하나둘 작가가 되기 시작하면서다. 내가 본격적으로 글스기 모임을 모집했던 게 벌써 8년 전인데, 그 무렵 모임에 참여했던 분들 여럿이 작가가 되었다. 청년으로서 의미 있는 목소리를 많이 내고 있는 작가나 커피와 탱고,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가들, 또 심리학에 관해 중요한 책을 출간한 작가 등 여러 작가들이 탄생하는 걸 목격해왔다. 그밖에도 뉴스레터를 함께 만들거나 공저를 함께 쓰기도 하면서, 많은 이들이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는 한 사람이 인생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체로 내 몸 하나만 잘 건사해도 잘 산 것이고, 가족만 잘 챙겨도 성공한 삶이다. 거기에 더해 친구들이나 좋은 사람들의 인생에 조금이라도 기쁨을 줄 수 있다면, 크게 성공한 삶일 것이다. 대부분 나를 챙기는 것부터 실패하고, 가족과 잘 지내는 것도 어려워한다. 나 역시 다르지 않지만, 적어도 글쓰기 모임이라는 시간에서만큼은 내가 누군가의 삶에 명료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래도 이 삶을 살길 잘했구나,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기여를 하는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는 많은 이들이 처음에는 자신이 글을 잘 쓸 수 있을 거라 믿지 않고,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임을 거쳐가면서 점점 글쓰기에서 기준을 갖는 법, 독자와 만나는 법, 자기만의 장점을 찾고 글을 써나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 공식적인 모임이 끝난 이후에도, 모임원들끼리 모여 사적인 모임도 이어간다. 서로 SNS를 공유하며 글쓰기를 응원하며, 글쓰는 연대를 만든다. 나는 나름대로 뉴스레터를 운영하며 모임원들을 초대하는 식으로 계속하여 글을 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그렇게 이어가는 글쓰기 속에서, 누군가는 정말 작가가 된다. 글쓰기로 삶을 바꾼다.
그 여정을 지켜보고 있으면, 내가 누군가의 삶에 작게나마 기여했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나는 인간이 타인을 구원하기란 좀처럼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자기 자녀 하나라도 제대로 돕는 게 쉽지 않다. 타인의 삶을 바꾸는 건 거의 인생에서 없는 일이다. 그러나 글쓰기를 통해 누군가의 삶은 조금 변한다. 삶에 글쓰기가 들어서면, 공허했던 밤이 달라진다. 책이 나오고 독자를 만나면, 주말에 다른 삶이 생긴다. 삶은 약간 더 풍요로워진다. 누군가는 글쓰기에 뛰어들어 새로운 삶을 산다. 나는 때론 그런 여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곤 한다.
물론, 글쓰기 모임이라는 한정된 시간의 일이 타인의 삶에 기여할 수 있는 정도는 제한적이다. 결국에는 그 이후에도 글을 꾸준히 이어가는 분들의 의지가 훨씬 중요하다. 결국 그들은 그들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나는 그 여정을 거의 처음에서부터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람으로 있을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처음 ‘내가 글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다.’ ‘나 같은 사람이 글을 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라고 하는 분들이 누구보다 당당하게 자기만의 글을 쓰며 나아가는 모습을 목격하다 보면, 그 시작을 함께할 수 있어 좋다고 느낀다. 결국 우리는 평생을 이어갈 수도 있는, 서로의 글쓰기를 지지하는, 글쓰기 동료가 된다.
글쓰는 일은 어찌 보면 외로운 일이다. 소속도 동료도 없이 혼자 고군분투하는 작가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내게는 작가 동료들이 있다. 모험을 떠나는 만화 주인공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동료를 배에 태우고 항해를 떠나며 함께 성장하듯, 나도 동료들을 얻는다고 느낀다. 결국 이 일은 기여하면서 동시에 내가 기여받는 일이기도 하다. 삶은 주면서 돌려받는 것이고, 그곳에 보람이 있다.
* 글쓴이 - 정지우
작가 겸 문화평론가, 변호사. 20대 때 <청춘인문학>을 쓴 것을 시작으로,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이제는 알아야 할 저작권법>, <그럼에도 육아> 등 여러 권의 책을 써왔다. 최근에는 저작권 분야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20여년 간 매일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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