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없고 진지한 내가 사랑스럽다
30대 초반까지 목표와 성취를 쫓으며 살았던 삶은 몇 년 전에 내려놨다. 하지만 지금도 마치 운동선수처럼, 수행자처럼 매일 같은 루틴을 반복하며 산다. 요가와 명상을 하고, 책을 읽고, 건강한 베이킹 등을 하면서 말이다. 노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어쩌다 한 번 논다 해도 그게 그렇게 즐거운 건지도 잘 모른다. 한 달 전 미팅을 했을 때 그런 분위기를 즐기는 게 어색했던 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꼬마처럼 순수하게 유희와 쾌락을 즐길 자격이 스스로에게 없다고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었을 테니까.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부적절한 사람처럼 느껴진 것이다.
그렇게 느끼는 내 모습이 싫지 않다. 예전에는 깊은 상처에서 비롯돼 모나거나 부족하게 느껴지는 면모들을 지닌 내가 불쌍했다. 있는 그대로의 불완전한 내 모습, 이런 모양으로 살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이 싫었다. 날 이렇게 만든 상처를 남긴 부모님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지금은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정서적으로 엄마를 돌보고 책임지며 빨리 애어른이 된 덕분에 난 사람들을 세심하게 챙기고, 깊게 배려할 줄 알고,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운영하는 웰니스 커뮤니티를 통해 멤버들이 치유되고 자신들이 성장했다고 느끼면서 그 커뮤니티가 3년 반 넘게 이어질 수 있었던 것도 어떻게 보면 내 어린 시절 상처와 부모님 덕분이었다.
연애 상대를 찾고 싶다는 욕구를 드러내며 즐기는 미팅에 몸서리치고, 잘 못 놀고, 내가 부러워 했던 티없는 어린아이 같은 면모를 죽을 때까지 갖지 못 해도 괜찮다. 어른스럽고, 성숙하고, 책임감 강하고, 재미 없고, 진지한 나도 좋다. 지금의 내가 사랑스럽다.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면 그와 같은 방식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보는 관점 또한 달라진다. 나의 일부였지만 직면하고 싶지 않았던 상처와 감정, 면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되면서 요즘 나는 주관적으로 느끼는 호불호나 옳고 그름의 경계가 희미해 져 가는 걸 느낀다. 어떤 상황이나 사건, 사람이든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의미와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전엔 나쁘고, 옳지 않고, 심지어 해롭다고 여겼을 법한 상황이나 사건에서 지금은 긍정적인 의미가 보인다. 날 힘들게 하고, 고통을 주고, 나에게 상처를 주는 것들이야말로 뭔가를 가르쳐 주고, 앞으로 나아갈 계기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관계 뿐 아니라 일에 있어서도 나의 주관적인 호불호의 프리즘으로 '이건 아님' 딱지를 붙이지 않으니 이전보다 더 많은 기회와 더 큰 가능성이 흘러 들어온다. 사실 이건 외부에서 나에게 온 게 아니라 지금까지 스스로 막고 있던 걸 드디어 봉인 해제한 것이다. 십 몇 년 간 '미팅 같은 건 안 하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규정하며 그었던 한계선을 무너뜨리고, 연애 상대를 찾는 자리를 자신에게 허용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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