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조심스러워
오가와의 일갈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요즘 후배사원을 대하기가 영 조심스러워 공감이 갔다. 지쳐있는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할까. 어떻게 이야기할까. 자체 심의만 여러번 하다가 늘 타이밍을 놓친다. 과묵한 선배가 되어버렸다. 웃긴 건 스스로 자초한 현상이라는 점이다. 후배들을 보면 까칠했던 내 옛모습이 자꾸 겹쳐보여 더 말을 못 걸겠다.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을 너무 잘해도 탈이다.
설명을 위해 나도 (별로 가고 싶진 않은) 신입사원 시절로 눈을 감고 타임슬립을 해본다. 바로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 시절에 도착했다는 신호다. 언제나 그랬듯 야근 중이다. 뻑뻑해진 몸을 깨울 겸 기지개를 편다. 멀리 서있던 선배 사원과 눈이 마주친다. 그가 나를 보고 어? 하는 표정을 짓는다. 웃으며 내 자리쪽으로 걸어온다. 나도 웃는 눈으로 조용히 인사하고선 속마음으로 강하게 외친다.
‘제발, 오지마. 와서 아무 말도 하지 마’
드라마에서 선배를 고발했다는 사람도 비슷한 마음이었을까. 당시의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말을 들어도 상처받을 자신이 있었다. 안 그래도 개복치로 유명한 성격인데 일도 서툴렀으니 중압감이 오죽했을까. 작은 자극에도 멘털이 가쓰오부시마냥 바스라지던 시절이었다. 상사나 동료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무서웠다. 그래서 미진한 일들은 쟁여뒀다가 아무도 없는 밤에 했다. 복잡한 마음으로 야근을 할 때면 누가 말을 걸까 봐, 일 이야기를 꺼낼까 봐 조마조마했다. 행여 나를 업무시간에 일을 다 못 끝낸 무능력자로 평가할까 봐, 그게 그렇게도 두려웠다.
“그거, 자아의 외주화 현상이에요”
얼마 전 읽었던 심리학 책에서 김정운 박사가 갑자기 나타나서는 전문용어를 쓰며 팩트폭력을 가한다.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추억을 상기하다 쳐져버린 내 눈이 번쩍 뜨인다.
자아의 외주화(outsourcing of self) : 타인의 시선이 삶의 정당성을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이 되는 상태. 자존감의 근거가 ‘타인의 인정’처럼 외부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다 보니 내면은 언제나 공허합니다. 항상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다 살다보니,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김정운, 『말하지 않고 말하기』, 2026, p331, 332)
뼈를 맞은 기분이다. 나대로 열심히 산다고 노력했지만 늘 마음이 허했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남을 신경쓰느라 에너지를 과하게 썼다. 머릿속을 불안감으로 채우느라 밑이 빠진 내 마음을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 미결과제로 남아버린 오랜 내 마음의 병을 애꿎은 후배들에게 대입한다. 실은 말 걸 용기가 없어 주저할 뿐인데 괜히 후배를 걱정하고 배려하는 척하느라 애쓴다. 못난이 같다 정말.
정말 시대의 문제인가, 시도의 문제인가.
자아의 외주화라니, 곱씹을수록 무시무시한 단어다. 갑자기 줄달린 마리오네트 인형이 된 기분이다. 드라마 한번 보고 유난 떨다가 생각이 여기까지 왔다. 외주 계약을 끊어내야 한다. 이제 나는 주저할 시간이 없다. 내 조심스러움을 유발했던 몇 가지 생각을 고쳐먹기로 다짐해 본다.
첫 번째, 일단 후배들이 나와 같을 거라는 이상한 희망을 버린다. 타인의 시선을 과하게 의식하는 주제에 자의식마저도 과잉이라니, 역설이다. 하나만 하자. 그들을 과소평가하지 말자. 그들은 나와 다르게 졸장부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나처럼 스트레스 받으면 감자칩을 두 봉지씩 먹느라 엄지와 검지가 미끌거리는 육신을 가지고 있지 않을 확률이 높다. 시대를 핑계삼아 후배사원들의 성격을 속단하는 일은 관두기로 했다. 시대가 문제가 아니다. 내가 증거다.
둘, 내가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돌아본다. 의외로 간과하고 있던 보다 본질적인 문제다. 생각해보면 왜 이딴 고민을 하고 있을까 싶다. 후배를 응원하는 마음이 간절하다면 사실 주저할 일도 없다. 망설이는 모습 뒤에 꼰대 취급을 받게 될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진짜 내가 서 있다. 기시감이 든다. 후배의 평가가 내 삶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자아의 외주화는 대를 이어서 진행 중이다. 타인의 인정으로 자존감을 채우면서 정녕 타인의 감정에는 관심이 없는 아이러니. 참으로도 창의적인 이기심이다. 어차피 이기적인 거, 주체성을 되찾기 위해 남을 진심으로 걱정해보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조심스러움’은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본다. 어쩌면 핑계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다. 평가가 두려워 관계에서 도망가고 싶을 때 꺼내 드는 명분일 수도 있다. 과감한 시도가 필요하다. 나도 방어용으로 끼고 있던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서 빼고, 후배들의 안위를 진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축처진 어깨가 보이면 순도높은 K-아재처럼 눈치 없이 “화이팅”을 외쳐볼까 한다. 인생 선배인 오가와 아저씨는 서로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해본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을 해준다. 김정운 아저씨도 옆에서 한 마디 거든다. 진심이 생긴 다음에 말을 거는게 아니라, 말을 걸다보면 진심이 생길 수도 있다고 희망을 준다. 든든하다. 오랜만에 설레는 마음으로 출근한다. 부디 내가 고발당하지 않길 바란다. 무사히 생존해서 다음 편 연재에서 독자분들과 또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