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서점의 낭만은 지속될 수 있을까
사유와 자유의 시간
from. 강동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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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에 온전히 마음을 쏟은 지 3년이 된다는 것은, 그 일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난 5월 2일, 공간 ‘크레타’가 세 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17년이라는 세월 동안 책을 읽고 사람들과 문장을 나누는 삶을 살아왔지만, 온전히 내 이름으로 일군 오프라인 공간을 책임지는 3년은 전혀 다른 차원의 성찰을 요구하는 시간이었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의 서툰 열정은 일상의 성실함으로 바뀌었고, 밤마다 서점의 불을 끄며 내쉬던 한숨은 지속 가능성에 대한 책임감으로 치환되었다. 무언가가 완성되기엔 짧지만 그 일에 익숙해지기엔 충분한 이 3년이라는 이정표 앞에서, 나는 막연한 미래를 조금이나마 선명하게 만들기 위해 다양한 서점들을 치열하게 찾아다녔다.
그동안 크레타는 쉼 없이 움직였다. 수많은 독서모임을 꾸려 사람들을 모았고, 작가들을 초청해 북토크를 열며 공간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텍스트로만 존재하던 연대가 물리적 공간을 만나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 증명하는 과정이었다. 다행히 서점을 시작한 뒤 빚은 늘지 않았고, 작년에는 최저시급에도 못미치지만 나의 인건비도 챙기는 서점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3주년을 어떻게 기념하고, 기억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보다, 앞으로의 여정에 대한 명확한 그림이 필요했다.
나는 크레타를 단순히 이쁜 서점 중 하나로 머물게 할 생각이 없다. 독자의 삶에 깊숙이 개입하는 대체 불가능한 브랜드가 되고 싶다. 지난 2월, 독립서점의 메카라 불리는 제주에서 “정답은 없지만 힌트는 도처에 있다”는 깨달음을 얻고 돌아온 이후, 내 안의 질문들은 한층 더 뾰족해져 있었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5년과 10년을 지속하기 위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채워야 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 갈증을 품고 얼마 전, 서울행 기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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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가장 먼저 발길이 닿은 곳은 혼자만의 시간을 선물하는 프라이빗 서점, ‘피프티북스’였다. 100% 예약제로 운영되는 그 작은 공간은 오직 한 사람의 몰입만을 위해 정교하게 디자인된 섬 같았다. 외부의 소음과 연락으로부터 완벽하게 단절된 채, 나는 아주 오랜만에 내 안의 소리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곳에 준비된 책들을 살펴보며 내 결에 맞는 책을 새롭게 만나는 발견의 기쁨은 강렬했다. 피프티북스는 내게 공간이 줄 수 있는 최고의 가치가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책을 진열하는 공간을 넘어, 독자에게 온전히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진공의 상태를 선물하는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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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향한 곳은 다양한 작가와의 만남을 꾸준히 이어오며 독특한 문학적 아우라를 풍기는 ‘진부책방 스튜디오’였다. 크레타 역시 북토크와 작가 연대에 공을 들여왔기에, 이곳의 운영 방식과 분위기는 남의 일 같지 않게 다가왔다. 문을 열자마자 공간을 채우고 있는 고가의 오디오 사운드는 이곳이 하나의 ‘문화적 스튜디오’임을 직감하게 만들었고, 책을 샀을 때 챙겨주는 천 책갈피 하나는 공간의 전체적인 감도를 어디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지 보여주는 완벽한 디테일이었다. 하지만 서점이라기보다는 카페 영업이 주가 되는 공간의 구조 탓에, 서점지기의 날카로운 취향과 책과의 팽팽한 긴장감을 기대한 사람에게는 본질이 조금 흐려진 듯한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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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커다란 인식의 균열을 일으킨 곳은 열 평 남짓한 아주 작은 서점, ‘로우북스’였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책방지기는 다른 손님에게 정성껏 책 추천을 해주고 있었다. 그 대화가 끝나고 내 차례가 돌아오자, 책방지기는 나를 향해 대담하게 말을 건넸다. “책 추천해드릴까요?” 순간 머리가 ‘띵~’해지는 충격을 받았다. 나 역시 크레타를 운영하며 손님들에게 “궁금한거나 책 추천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라고 외치며 거리감을 좁히려 노력하는데, 로우북스의 멘트는 한 발 더 과감하게 독자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이른바 공격적인 접객이었기 때문이다. 도망갈 곳도 없는 좁은 공간에서 서점지기가 옆에 딱 붙어 질문을 던지면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데, 로우북스는 인간관계의 맺고 끊음을 적절하게 조율하는 감각이 탁월했다. 그 거리감을 친밀감으로 전환하는 세련된 접객을 목격하면서, 오프라인 공간의 성패는 결국 손님과 대면하는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 결정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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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객, 취향의 전시를 넘어선 서비스의 본질
서울의 독립서점들을 밀도 있게 경험하고 돌아오는 길,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단어는 결국 ‘접객(接客)’이었다. 전국의 모든 독립서점들이 대형 플랫폼의 틈바구니 속에서 책 한 권을 더 팔기 위해 눈물겨운 고군분투를 벌이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독립서점을 서점지기의 고상한 취향을 전시하는 낭만적인 공간으로 포장하곤 하지만, 냉정하게 바라본 서점의 정체성은 철저하게 영업직이자 서비스직에 가까웠다. 내가 아무리 애정을 담아 취향을 가득 채워 멋진 공간을 꾸며놓았을지라도, 그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의 마음을 붙잡지 못한다면 그 공간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서점을 애써 찾게 만들고, 그곳에서 지갑을 열어 책을 사게 만드는 힘은 결국 접객이라는 본질을 절대 놓치지 않는 데서 나온다. 그것은 단순히 친절하게 인사를 건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손님이 공간에 머무는 동선 하나, 시선이 머무는 서가의 높이, 그리고 서점지기가 건네는 멘트의 적절한 온도까지 모두 포함하는 거대한 브랜드 경험의 설계다. 지난 2월 제주 소심한 책방의 깨알 같은 손글씨 메모들과 소리소문의 공감각적 큐레이션 경험이 던져준 힌트들이, 이번 서울 투어를 통해 적극적인 접객과 서비스의 시스템화라는 보다 현실적이고 날카로운 통찰로 이어졌다. 제주의 사유가 씨앗이었다면, 서울의 경험은 그 씨앗을 깨우는 세찬 바람이었던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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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독서 경험을 디자인하는 비즈니스로 확장
이제 크레타의 시즌 1을 명확하게 매듭지어야 할 때가 왔다. 그동안 수많은 독서모임과 북토크로 서점의 기초 체력을 다졌다면, 이제부터의 5년과 10년은 크레타라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비즈니스적으로 과감하게 확장하는 시즌 2가 될 것이다. 나는 크레타를 단순히 이쁜 서점 중 하나로 머물게 할 생각이 없다. 크레타의 미래는 명확하다. 우리는 손님들의 특별한 독서 경험을 정교하게 디자인하고, 그 경험이 독자 개인의 삶에 단단하게 녹아들 수 있도록 돕는 파트너가 될 것이다. 책을 매개로 하여, 독자가 자신의 자기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뾰족하게 다듬어 나갈 수 있도록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는 것. 그것이 크레타 시즌 2의 본질이다.
이를 위해 나는 공간의 경계를 허물고 확장을 계속해 나가려 한다. 온전한 몰입을 구현할 프라이빗한 독서 공간의 조성, 함께 읽기의 즐거움을 축제처럼 나누는 리딩 파티의 기획, 일상의 감도를 높여줄 크레타만의 고유한 독서 굿즈 개발, 나아가 부산의 자연과 독서를 결합하여 삶의 한 끗을 바꾸어 줄 북스테이와 독서 여행 플랫폼 구축까지. 이 모든 비즈니스적 실험들은 단순한 확장이 아니라, 가치를 제안하는 태도를 시스템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필연적인 여정이다.
정답은 우리를 멈춰 세우지만, 힌트는 우리를 끊임없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게 만든다. 제주와 서울에서 주워 모은 무궁무진한 힌트들을 품고 크레타의 두 번째 장을 펼쳐야 할 때가 되었다. 완벽한 정답은 없을지라도,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들에게 끊임없이 매력적으로 말을 거는 서점. 그리하여 마침내 당신만의 뾰족한 취향을 찾아내게 만드는 사유의 거점으로서, 크레타는 자리매김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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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유와 자유의 시간
골목에서 작은 서점을 운영하면서, 책과 사람이 만나 펼쳐지는 소소하지만 진솔하고, 일상적이지만 이상적인 이야기를 전하려 합니다.
* 글쓴이 - 강동훈
부산 전포동에서 '크레타'라는 작지만 단단한 서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책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책을 읽게 만드는 사람이 되려 노력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책을 잘 파는 서점인이 꿈이자 목표입니다.
* 인스타그램 : www.instagram.com/bookspace.cre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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