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 서서 이런 말을 되뇌어 본 적이 있는가.
새벽 한 시. 잠이 오지 않는다. 이유를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낮에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이 마음 한구석에 걸려 있는 것도 같고, 딱히 이유 없이 마음이 묵직한 것도 같다. 릴스를 넘기고, 쇼핑몰을 기웃거리고, 누군가의 여행 사진을 훑었다. 무엇을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알 수 없던 불편함은 어느새 희미해진다.
우리는 고통을 없애는데 능숙한 시대에 살고 있다. 불쾌한 감정이 올라오면 달콤한 간식으로 덮고, 새벽 세 시의 외로움은 숏폼 콘텐츠 알고리즘이 달래준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괴로움을 해결해야 할 ‘증상’으로 묘사하며 스파, 힐링 여행, 기분 전환용 쇼핑 같은 해결책을 끊임없이 제시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고통은 점점 삶의 일부가 아니라 제거해야 할 비정상으로 여겨진다.
물론 고통을 피하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하지만 고통을 꺼리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지금 외롭다’, ‘불안하다’, ‘수치스럽다’고 불편함을 그대로 인정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러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어딘가 부족하고 부적절하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동료의 말에 서운함을 느껴도, ‘내가 예민해서 그런가’ 싶어 서둘러 마음을 누르고, 누군가가 “힘들지?”하고 위로를 건네면 ‘내가 그렇게 힘들어 보이나’ 싶어 오히려 민망함과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누군가가 힘겨워할 때에도 “괜찮아질 거야”라거나 “빨리 털고 일어나”라는 말을 쉽게 건넨다. 위로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고통이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인 전제가 담겨 있다. 고통이 있는 삶은 어딘가 잘못된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 사상가 벨 훅스(bell hooks)는 이를 두고 “고통이 가치 없다는 믿음은 개인의 태도가 아니라 문화적으로 구축된 환상이다. 우리는 고통을 두려워하도록 사회화되었다”고 말한다. 고통으로부터 최대한 멀어지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는 믿음 때문에, 결국 우리가 타인과 자신의 고통을 외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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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는 스스로를 제법 성실한 엄마라고 생각한다. 아이 식단을 꼼꼼히 챙기고, 잠자기 전 책을 읽어주고, 주말마다 외출을 계획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아이가 또래에 비해 말이 늦다거나 사회성이 부족해 보일 때면, ‘내가 충분히 신경 써 주지 못해 그런거 아닌가’ 하는 자책이 몰려왔다. 그럴수록 S는 더 부지런해졌다. 아이를 위한 추천 도서를 알아보고, 영양제를 사다놓고, 체험활동을 예약했다. 무언가를 하고 있으면 불안과 죄책감이 조금 옅어지는 것 같았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경험 회피(experiential avoidance)’ 라고 부른다. 불안, 슬픔, 죄책감 같은 불쾌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기보다, 억누르거나 다른 자극으로 덮어버리는 방식이다. 이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다. 정보를 검색하는 동안 불안은 줄어들고, 타임라인을 스크롤하는 순간 외로움은 잠시 잊힌다. 수용전념치료(ACT)의 창시자 스티븐 헤이즈(Steven C. Hayes)는 이러한 회피가 반복되는 이유를 ‘즉각적인 안도감이라는 강력한 보상’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고통을 피할 때마다 작은 위안을 얻고, 그 경험이 쌓이면서 점점 더 회피를 선택하게 된다.
문제는 감정이 억눌린다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오히려 감정을 지속적으로 회피하는 사람일수록 장기적으로 더 높은 수준의 불안과 우울을 경험하게 된다. 연구자들은 억눌린 감정은 더 증폭되거나, 신체적 긴장과 만성 피로, 관계의 단절이라는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고 이야기한다.
S 역시 죄책감에서 도망치느라 정작 아이에게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마음은 늘 답답하고 무거웠고, 아이의 작은 실수에도 짜증이 솟구쳤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모습에 다시 자책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점점 즐거움보다 부담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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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심리학은 고통을 바라보는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변증법적 행동치료(DBT)는 ‘고통 감내(distress tolerance)’를 중요한 기술로 보며, 이를 “당장 상황을 바꿀 수 없을 때 자신을 무너뜨리지 않고 버티는 능력”이라고 설명한다.
수용전념치료(ACT)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고통을 줄이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심리적 유연성(psychological flexibility)'을 강조한다. 이는 불편한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가치에 따라 행동을 이어가는 능력이다. 즉, 고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함께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실제로 감정을 회피하기보다 충분히 인식하고 표현할 수 있을 때,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 조절 능력이 향상되고 불안과 우울이 완화되는 경향이 있다. 회복의 핵심은 고통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경험할 수 있는 힘을 회복하는 데 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갑작스러운 울음 앞에서 당황하게 된다. 아기의 울음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오히려 긴장감을 높이고 허둥대게 만든다. 그렇다고 우리는 울음을 없애려 하거나 도망치지 않는다. 그보다 아이의 필요를 살핀다. 배가 고픈지, 졸린지, 몸이 불편한지 확인하고 돌봐준다.
우리의 감정도 마찬가지다. 공허함이나 불안, 외로움이 올라올 때, 반사적으로 휴대폰을 들어 감정을 덮어버리기보다 “지금 나는 무엇이 필요한가”를 물어볼 수 있다. 복잡하게 얽힌 마음을 정리할 필요가 있는지, 가까운 친구에게 연락하는 것이 필요한지, 혹은 잠시 쉬어야 하는지.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만 어느 날 저녁, S는 모든 걸 멈추고, 노트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분노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들여다보기 위해서였다. ‘아이가 잘못될 거 같아 불안하다’는 문장에서 한참 멈춘 뒤에, ‘나는 좋은 엄마가 아닌 거 같다’, ‘더 잘 챙겨줬어야 하는데’라는 죄책감이 펜 끝에서 흘러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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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오히려 잘 살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고통은 우리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 드러내기 때문이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죄책감이 커지고, 사랑이 깊을수록 이별의 슬픔도 깊어진다. 사람들과 연결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의미 있는 관계가 충분하지 못할 때 외로움을 느낀다. 나의 한계를 깨뜨리고 새로운 일을 시도하려고 할 때 수치와 실망을 겪게 된다.
그러므로 슬픔이 충분히 슬퍼질 수 있도록, 분노가 충분히 분노할 수 있도록, 두려움이 충분히 두려울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줄 필요가 있다. 더 나은 삶을 바랐기에 필연적으로 따라온 고통임을 알아주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간이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S는 여전히 완벽한 엄마가 아니다. 지치고 후회하는 날도 여전히 많다. 하지만 이제는 그 감정을 서둘러 지우기보다, 잠깐 멈추고 숨을 고른다. 그리고 그 죄책감이 더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도 알아준다.
때로는 아이에게 최선을 주지 못했다는 아쉬움 또한 그대로 견뎌낸다.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야말로, 자신과 아이 모두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길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제 S에게 필요한 것은 아이를 위해 더 많은 것을 해내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아이가 결국 자신의 길을 찾아갈 것이라는 믿음을 단단하게 다져가는 시간이다.
그룹 AKMU(악뮤)는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이라는 곡에서 이를 섬세하게 노래한다. ‘기쁨 뒤에 슬픔이 오는 건 아름다운 마음이야. 겁내지 말고 마주앉아라. 찬란한 그림이 된단다.’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이 깊을수록 기쁨과 슬픔은 함께 짙어진다. 슬프고 불안하고 외로운 날들 또한 결국 하나의 조각이 되어, 우리가 진심으로 바라는 ‘찬란한 그림’을 이루어간다. 그래서 어쩌면, 그런 날들마저도 우리는 이미 충분히 잘 살아내고 있는 순간인지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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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Istock
* 글쓴이 - 이지안
여전히 마음공부가 어려운 심리학자입니다. <감정 글쓰기>, <성격 좋다는 말에 가려진 것들>을 출간하였고, <나를 돌보는 다정한 시간>,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를 공저하였습니다. 심리학 관련 연구소에서 일하며 상담을 합니다.
캄캄한 마음속을 헤맬 때 심리학이 이정표가 되어주곤 했습니다. 같은 고민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닿길 바라며, 심리학을 통과하며 성장한 이야기, 심리학자의 눈으로 본 일상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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