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학생으로 네덜란드에 머물던 시절, 친구들과 주말에 근교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 우리는 철도 시스템을 잘 알지 못한 채 일회용 티켓을 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학생 할인 정기권이라는 더 저렴한 선택지가 있었다. 경제학과 친구가 말했다. "이게 바로 어제 수업에서 배웠던 '탐색 비용'이네. 정보를 몰라서 비싼 비용을 지불하는 거."
몰랐기 때문에 비싼 값을 치르다니. 그렇잖아도 생활비를 아끼고 있던 터라 내가 몰라서 써버린 20유로가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정보만 있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손해였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했다. 정보를 더 꼼꼼히 찾아보면 되는 거 아닌가. ‘탐색 비용’이라는 단어는 그 후로도 마음에 남았다.
그래서였는지 나는 어떻게든 정보를 모았다. 여행을 갈 때도 더 저렴한 숙소, 렌트카, 공연 티켓을 찾아내는 데서 묘한 쾌감을 느꼈고, 사소한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조금이라도 싼곳을 찾아야 마음이 놓였다. 마치 더 나은 선택지를 찾는 게임처럼 느껴졌다. 지금 돌아보면 고작 몇 천 원 차이였던 경우가 대부분인데도, 그렇지 못하면 괜히 손해 본 기분이 들었다.
물건을 싸게 샀을 때뿐 아니라 시간을 효율적으로 썼다고 느낄 때도 마음이 개운해졌다. 오전에 해야 할 일을 동선까지 고려해 말끔히 끝냈을 때, 붐비지 않는 시간을 골라 은행 업무를 빠르게 처리했을 때, 허비하는 시간 없이 약속장소에 도착했을 때도 그랬다. 해야 할 일을 빠르게 마쳤다는 안도감에, 마치 시간을 어딘가에 저축해 둔 사람처럼 느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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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효율적으로 사느라 놓치는 것이 있었다. 출근길에 할인 정보를 검색하느라 읽으려던 책은 끝내 펼쳐보지도 못한 채 지하철에서 내려야 했다. 멀리 나온 김에 근방의 서점, 이불가게까지 들르는 것으로 일정을 잡고 나면 모처럼 쉬고 싶었던 주말은 사라져 있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애쓰는 동안 나는 분명 다른 비용을 치르고 있었다.
언젠가 상담 공부를 하며 ‘삶에서 무엇이 중요하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도움을 주는 것’, ‘연결되는 것’과 함께 ‘여유로운 것’을 꼽았다. 내가 생각하는 여유란, 시간을 천천히 흘러가게 두는 것이다. 멍 하니 소파에 앉아 상념에 잠겨 보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느린 걸음으로 걷고, 가만히 앉아 강아지를 쓰다듬는 시간이 그러했다. 그럴 때 주로 내가 놓치고 있던 중요한 생각이 떠오르고, 소식이 궁금한 누군가가 생각나고, 글감이 떠오르기도 했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 삶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분명히 알아차리는 시간이다. 그때 내 몸은 부드러워지고, 마음도 느슨해졌다. 하지만 효율을 우선하는 선택이 쌓이면서, 나는 이 시간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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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갑작스러운 남편의 발령으로 잠비아를 떠나게 되면서, 나는 촉박한 시간 안에 짐을 싸야 했다. 모든 살림을 고작 캐리어 몇 개에 담아가야 했기 때문에, 가져갈 짐을 분류하고 물건을 팔고 나누는 일을 동시에 해야 했다.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떠나게 될까 봐,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짐 싸는 일이 유난히 버겁게 느껴지던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잠비아에서의 마지막 한 달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가?’
내 대답은 분명했다.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는 이곳에서, 짐 싸느라 마지막 한 달을 그저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과 작별의 시간을 충분히 보내고, 내가 좋아했던 장소를 한번이라도 더 가보고, 평화로운 잠비아와 어울리게 평안한 마음으로 이곳에서 남은 며칠을 보내고 싶었다.
그렇다면 선택지는 하나였다. 짐을 완벽하게 싸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설사 챙기지 못하고 두고 가는 물건이 생기거나, 팔거나 나누지 못해 버려지는 것이 있더라도 감수하는 것이다. 친구들과 식사를 한 끼 더 하고, 가족들과 자주 갔었던 정원이 근사한 카페에 더 가 보고, 신세를 졌던 분들을 찾아뵙는, 내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시간을 쓰기 위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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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이해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낭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조금 더 알아봤으면 아낄 수 있었던 돈, 면밀히 계획했으면 절약할 수 있었던 시간, 조금 더 공들였으면 해낼 수 있었던 일의 완성도. 이 모든 '낭비'는 내가 더 가치를 두는 것을 위해 기꺼이 지불하는 비용이다.
네덜란드에서 낭비했던 그 20유로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 정확한 정보를 찾아 헤매는 대신, 그 시절에만 함께 할 수 있었던 친구들과 조금이라도 더 수다를 떨고, 낯선 도시를 느긋하게 구경하는 데에 쓰인 돈이었다. 무엇이 더 효율적이었는지는 결국, 내가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데도 우리의 몸은 익숙한 관성을 따라 달리기 쉽다.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 내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방향으로 전력을 다해 달리고 있을 수 있다. 지금도 나는 습관처럼 피로를 느끼면서도 '지금 해 두는 게 효율적이기 때문'에 계속 움직이고, 쉬려고 만든 여유 시간에조차 생산적인 무언가를 채워 넣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잠비아에서의 마지막 날들을 떠올린다. 완벽하게 정리되지 않은 짐, 미처 팔지 못한 물건들. 하지만 그 대신 얻은 친구들과의 오후, 평온했던 카페의 시간들. 효율을 포기한 대가로 얻은, 내가 정말 원했던 것들. 지금도 나는 묻는다. 오늘 나는 무엇을 위해 시간을 '낭비'할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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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Istock
* 글쓴이 - 이지안
여전히 마음공부가 어려운 심리학자입니다. <감정 글쓰기>, <성격 좋다는 말에 가려진 것들>을 출간하였고, <나를 돌보는 다정한 시간>,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를 공저하였습니다. 심리학 관련 연구소에서 일하며 상담을 합니다.
캄캄한 마음속을 헤맬 때 심리학이 이정표가 되어주곤 했습니다. 같은 고민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닿길 바라며, 심리학을 통과하며 성장한 이야기, 심리학자의 눈으로 본 일상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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